백남기농성장의 청소년 흡연 논란 법 들먹이며 야단치는 어른에게 ‘건강도 국가 통제 받아야 하나’ 푸코 “권력이 개인의 육체 장악”… ‘생체권력’ 이론에서 비롯된 생각 흡연 막으면 청소년 혐오? 자극적 담론 유포한 좌파의 폐해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백남기 농성장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어른들(물론 같은 좌파)로부터 야단을 맞은 두 좌파 청소년의 사소한 이야기를 엿들은 것도 이 공간을 통해서였다. 스스로 청소년 녹색당원이라는 두 청소년은 자신들을 ‘탈(脫)가정 상태’라고 했다. 예전의 ‘가출 청소년’을 지금은 ‘탈가정’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농성장의 어른들과 말싸움을 벌이던 그들은, 나이가 어리다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들었다. 누군가가 청소년보호법을 얘기하자 그들은, 법과 국가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법을 말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 아니냐면서, “당신들은 꼰대다”라고 했다(좌우 양쪽에서 어른들은 모두 꼰대다).
법과 국가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운동 목표라는 것도 기막힌 일이지만, 정작 내 관심을 끈 것은 그 다음 말이었다.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존재이니 건강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문제예요. 우리는 지금 우리의 건강조차 국가에 의해 통제받고 있어요. 저들은 여성과 청소년을 국가의 자원으로 또는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고요.” 이건 개인의 육체까지 권력이 장악하고 있다는, 미셸 푸코의 ‘생체 권력(bio-power)’ 이론이 아닌가. 기존 이론을 뒤엎은 전복(顚覆)적 철학자의 이론이 아무런 맥락 없이 미성년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의 은밀하고 하찮은 행위를 겨냥해 이처럼 떠들썩한 캠페인을 벌인 이유가 무엇인가? 일찍이 마르쿠제는 성 억압의 가설을 제시했다. 즉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한 순간, 이때까지 쾌락의 기관이었던 몸이 생산의 도구가 되어야 했고, 따라서 쾌락 기관으로서의 몸은 억압되고, 생산 도구로서의 몸이 장려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두 가지 의문을 제시하며 성 억압설을 반박한다. 쾌락의 몸을 억압하고, 생산하는 몸을 고양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성 일반을 억압하거나, 아니면 노동 계급 성년의 성을 문제 삼는 것이 옳다. 그런데 반(反)자위행위 캠페인은 근로계층의 청소년이 아니라 거의 배타적으로 부르주아 가정의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푸코는 쾌재를 부른다. 이 캠페인은 미래의 지도층을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부르주아 권력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반자위행위 캠페인이 벌어진 바로 그 시점부터 교육은 철저하게 국가에 의해 통제됐고, 청소년의 건강도 국가가 관리하게 됐다. 이때부터 국립 교육기관이 대대적으로 설립됐고, 상류층 어린이들은 집에서 나와 기숙학교로 들어갔다.
프롤레타리아 가정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캠페인이 벌어졌는데, 주로 1820∼40년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결혼하라. 그러나 무작정 아이부터 낳지는 말라’라는 구호가 그것이다. 경제의 기초를 담당하는 계급으로서의 노동계층의 안정성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푸코의 분석이다. 현재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흔히 하는 말, “우리가 아이 낳는 기계냐?” 또는 “나의 결혼과 출산을 왜 국가가 간섭하느냐?”라는 말들이 모두 푸코의 부르주아 권력 분석에 그 기원을 갖고 있다.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