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이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째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
남미의남쪽변경에서만난양들은계속죽기만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세계 지도에서 파타고니아를 찾아본다. 남아메리카 중에서도 아래, 나라로는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있고 지형으로는 안데스 산맥이 있는 그곳이 파타고니아이다. 예전에 거대한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해 오는 곳이며 지금은 빙하와 초원이 펼쳐져 있는 곳. 파타고니아는 우리에게 그다지도 낯선 지명이지만 이미 많은 소설가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곳이라고 한다.
짐작건대 그곳은 세상의 정적을 들을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휴대전화보다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보다 자연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내가 아닌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가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바로, 마종기 시인의 시도 그런 가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은 자기의 세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파타고니아에 와 있다. 믿었던 가치가 흔들리고 삶에 회의가 들어서 해답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찾기 어려운, 소중한 가치라면 아마도 가장 먼 곳에 숨겨져 있겠지. 그곳에서 시인은 들풀을 먹는 양을 보고, 그 양을 먹는 콘도르를 보고, 죽어가는 양도 보았다. 이 모든 것 사이에서 시인은 아직도 흔들리고 상처받고 있는데, 특히 이 흔들림과 상처가 스산하여 이 시가 더욱 좋아진다. 아마 모든 상처가 회복되었다면 그곳은 쓸쓸해서 소중한 파타고니아일 수 없다. 여행에서 고통이 다 해소되었다면 그 해소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이 시는 쓸쓸하고, 묵직하게 우리의 심장을 두드린다. 누구의 것도 아닌,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너의 파타고니아를 찾으라고 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