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논설위원
국면 전환의 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하던 10년 전과 지금의 안보 상황은 비교할 수 없다. 아버지 김정일만 해도 협상을 했고 이미 완성한 핵 기술을 꺼내놓을 때 정치적 효과를 계산했지만 김정은은 거침이 없다. 1월 6일 4차 핵실험 이후 9개월 동안 무려 21회 핵미사일 로켓 실험을 한 뒤 9월 9일 5차 핵실험으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을 정도로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최종 목표를 향해 치닫고 있다.
북 외무상은 유엔 연설에서 대놓고 “핵무기는 정당한 자기 방어다. 절대 포기 안 한다”고 공표했다. 미국 전쟁전략의 메카 ‘랜드 연구소’는 북이 4년 후 핵무기 100개를 보유할 것이라 했다. 김정은의 북한은 이제 돈이나 달라고 징징대는 말썽꾸러기(trouble maker)가 아니다.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균형을 일거에 뒤바꿔놓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내년은 북핵을 놓고 뭔가 국면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들이 더는 공상이나 과장이 아닌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북핵 시설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고, 북이 서해 5도에 특수부대를 활용한 기습공격을 하거나 한국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국지전을 도발할 수도 있다. “한미가 사소한 침략 징후라도 보이면 무자비한 핵 선제타격을 통해 청와대와 서울을 흔적도 없이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북의 위협이 엄포로만 들리지 않는다.
문 전 대표는 송민순 회고록 논란을 해묵은 ‘종북 타령’으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 입장에선 북핵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한마디 비판도 없이 박근혜 정부를 향해 ‘참여정부만큼만 하라’는 문 전 대표의 대응 논리가 다가오지 않는다. 참여정부를 정치적 비전으로 내세우는 듯한 이런 논리는 대선 구도를 친노(친노무현) 대 비노(비노무현)로 가를 게 뻔하고 친노를 안보불안 세력으로 인식하는 여론이 높아지면 불리한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많은 국민이 군통수권을 갖는 대통령의 역할을 그에게 맡기기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그의 대권 가도엔 차질이 생길 것이다.
다음은 안보 대통령
문 전 대표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안보가 경제보다 우선이다. 경제는 사람만 잘 써도 풀어갈 수 있지만 안보와 외교에 관한 마지막 결정은 결국 대통령이 해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다음 대통령은 국제 정세에 정통하고 북핵에 대한 해법과 이를 밀어붙일 수 있는 강한 결단력을 갖춰줬으면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마땅한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