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아름다운 마침표 ‘웰다잉’]한국의 죽음체험 프로그램
6일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서 ‘임종체험’ 참가자들이 수의를 입은 채 관에 들어가 있다(위쪽 사진). 참가자들은 입관 전 자신의 영정 사진을 보며 가상의 유언장을 작성하고 죽음 관련 동영상을 시청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청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는 떨렸고 여러 차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마치 죽음을 앞둔 듯 ‘마지막’이란 단어를 되뇌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앳된 얼굴의 청년은 그렇게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10여 분 뒤 사람들은 차례로 자신이 쓴 유언장을 읽기 시작했다. 한 여성은 “엄마 아빠 오빠” 고작 여섯 글자를 읽고는 목이 메어 한동안 흐느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유언장 속에 그려진 등장인물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와 다른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절반이었고 감사의 마음이 나머지 절반을 채웠다.
“이제 시간이 다 됐습니다. 관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유언장 낭독이 끝나자 사회자는 ‘입관(入棺)’을 지시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왼쪽에 놓인 관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곧 관 뚜껑이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다.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졌다.
이날 강당에서 벌어진 풍경은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장례의식을 경험하는 ‘임종체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눈물 젖은 유언장을 쓰고 관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한 대학 신입생들이다. 영정용 사진을 촬영할 때만 해도 친구들과 셀카를 찍으며 장난치기 바빴지만, 체험 후 이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은 대부분 ‘죽음’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지수 씨(19·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렸다”며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며 현재 내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죽음 앞에서 ‘평범함’에 감사하는 사람들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죽음을 체험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참가자 10명 중 7명은 20, 30대일 정도로 젊은 체험자들이 몰리고 있다. 정용문 효원힐링센터장은 “죽음을 금기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3, 4년 전만 해도 참가자가 많지 않았다”며 “최근 죽음을 체험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려는 젊은층까지 늘면서 한 달에 300∼400명 가까이 센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웰다잉 프로그램은 다가올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성격이지만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 삶을 다짐하는 의미가 더욱 크다. 정 센터장은 “알코올의존증 증세를 보이던 한 참가자는 임종 체험 후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다”며 “남은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사람들이 죽음을 체험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