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임종 대비 ‘슈카쓰’ 바람
6일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서 열린 ‘임종체험’ 참가자가 ‘사랑한다’는 내용을 담은 가상 유언서를 쓰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남은 삶을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시간을 갖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남겨질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346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7.3%다. 노인이 늘어난 만큼 사망자도 많아지자 ‘다사(多死) 시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엔딩 노트(ending note)와 유언장 작성법, 연명 치료 피하는 법, 지혜롭게 상속하는 법 등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관련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슈카쓰는 과거 장례식에 초점이 맞춰졌던 장의 사업의 영역을 현재 연 5조 엔(약 54조 원) 규모의 ‘라이프 엔딩 서비스’로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도 머지않아 맞게 될 세상이다.
① 일본에서는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슈카쓰(終活) 관련 강연회나 상담회가 간간이 열린다. 장의 관련 업체 이온라이프가 연 ‘슈카쓰 페어’에서 참석자들이 강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지바=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②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준다’고 해서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는 입관 체험 코너. ③ ‘나의 역사’를 출판하기 위해 아사히신문 기자의 취재에 응하는 노부부. 개인 역사 출판은 일본 노년층 사이에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아직 건강한데 무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장례 같은 화제는 심각한 병에 걸린 뒤에는 오히려 꺼내기 힘듭니다. 건강할 때 가족과 얘기해야 합니다.”
강사는 아무 준비 없이 장례를 치르게 된 가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과도한 지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망한 와중에 주위에서 “고인을 위해서” 또는 “남들도 그 정도 한다”라고 말하면 생각지도 않았던 지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슈카쓰 페어를 방문한 사람들은 상속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2억 엔의 재산을 부인과 두 자녀에게 한꺼번에 상속한다면 상속세는 4000만여 엔입니다. 하지만 20년에 걸쳐 매년 1인당 110만 엔씩 나눠줬다면 상속세는 절반 이상 줄어듭니다. 재산 일부를 생명보험으로 들어 두면 더 가벼워지죠.”
일본 정부는 80, 90대 고령의 부모가 자연사한 뒤 60, 70대 자식에게 상속하는 ‘노노(老老)상속’이 사회 문제가 되자 증여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뜯어고쳤다. 연간 110만 엔(약 1188만 원)까지는 누구에게 증여해도 세금을 물지 않게 됐다.
이온라이프는 지난해부터 전국을 돌며 슈카쓰 페어를 연 100여 차례 열고 있다. 이날도 강사들은 △‘엔딩 노트’ 쓰는 법 △상속 증여 등 재산관리법 △생전에 집안 정리하는 법 △자신에게 맞는 장의·묘지 고르는 법 △후손이 없는 노인들을 위한 후견인 제도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즉석 상담 코너가 마련됐다. 입관 체험 행사도 열렸다.
오후 2시부터 2시간 반 동안 5가지 강연이 쉬는 시간 없이 이어졌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남편(74)과 함께 강연을 듣던 가키다키 다에코 씨(73)는 기자가 가장 유익했던 강연이 무엇이냐고 묻자 “살아 있는 동안 집안 정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요령을 알려줘 도움이 됐다”며 “상속 문제도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입관 체험은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고 해서 노인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인기라고 한다. 이날 관 속에 처음 누워봤다는 50대의 호리에 씨는 “묘하게 편안함을 느꼈다. ‘죽고 싶다’가 아니라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장의 서비스’에서 ‘라이프 엔딩 서비스’로
하지만 이를 슈카쓰와 관련된 ‘라이프 엔딩 서비스’로 범위를 넓히면 연간 5조 엔(약 54조 원) 시장에 육박한다. 여기에는 사전 사후 자산 운용과 △상속, 의료 간병 등의 정보 제공 △엔딩 노트 유언 등의 작성 지원 △장의나 묘지 등의 생전 계약 지원 △제사나 유품 정리 대행 △성묘 △유족에 대한 정신적 지원 등이 포함된다.
8월 하순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엔딩산업전 2016’에도 수만 명이 다녀갔다. 장인이 만든 장의용품, 작가가 디자인한 유골함 등 고급화를 꾀한 상품들이 선을 보였고, 장례의 상식을 깨는 아이디어 상품들도 적잖이 등장했다. 유족이 크루즈를 타고 고인의 뼈를 바다에 뿌리는 행사를 주관하는 ‘해양 산골’이나 대형 풍선에 유골을 넣어 30∼35km 높이 성층권에 쏘아 산골하는 ‘풍선 우주장’ 등 묘를 쓰지 않고 유골을 처리하는 장례 상품들이 그런 예다. 한 업체는 2017년에는 유골을 달 표면으로 옮기는 ‘월면장’도 기획하고 있다며 “밤하늘을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최고의 장례가 될 것”이라고 권했다.
장의회사가 개인 인생사를 정리한 홈페이지 꾸미기, 사망 후 지인에게 보낼 동영상 제작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사후 특정 시기에 자녀가 묘를 찾아오면 고인이 미리 찍어둔 모습으로 등장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개발됐다. 예를 들어 곧 성인식을 맞는 딸이 찾아오면 “우리 딸, 곧 성인식이네. 얼마나 예쁠지…. 엄마가 함께 못 해서 미안해”라는 영상 메시지를 스마트폰에 띄우는 식이다.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며 남겨진 가족들을 배려하는 고인의 마음이 가족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종말 치료 방법 미리 상의해야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수는 130만여 명이다. 일본의 연간 사망자는 2003년 100만 명을 넘어선 뒤 꾸준히 늘고 있다. 2022년부터는 650만 명에 이르는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75세에 접어든다.
현재는 사망자의 80%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지만 고령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 앞으로는 이것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종말 치료와 임종을 자택에서 하는 ‘홈 다잉’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자택에서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는 것은 많은 일본인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환자 또는 가족과 종말기 치료 방법에 대해 상의하는 ‘어드밴스 케어 플래닝(ACP)’이 확산되고 있다. 본인이 원하는 ‘최후’를 실현하기 위해 의사 표시가 가능한 상태부터 ‘만약의 경우’에 대해 대화하고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이다. 주로 고령자나 암 환자가 대상이다.
연명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단다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스스로 음식을 삼킬 수 없게 되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집, 병원, 시설 중 어디에서 임종을 맞기를 원하는지도 확인한다. 의사 베니야 히로유키(紅谷浩之) 씨는 “본인 의사를 제대로 알아둬야 가족과 의료진이 난처해지지 않는다”며 “병세가 나빠질수록 말하기 어려워지니 병이 악화되기 전에 대화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강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