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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대기자의 人]한국서 배운 근면 자조 협동… 마을마다 “잘살아보세”

입력 | 2016-10-22 03:00:00

새마을지도자대회 참석 위해 방한한 외국 활동가들




‘2016 지구촌 새마을지도자 대회’ 첫날인 18일,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에서 만난 탄자니아의 클레멘스 씨(오른쪽)와 미얀마의 산 코 씨. 뒤는 글로벌 새마을운동 전시자료. 두 사람이 설명하는 새마을운동을 접하게 된 이후의 ‘변화’를 들으며 ‘동기유발’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평창=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심규선 대기자

 한국의 기독교계가 경쟁적으로 해외 선교활동을 벌이는 데 위화감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기사를 위한 보충자료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목숨까지 바쳐가며 이 땅에 헌신한 해외 선교사들의 행적을 읽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평가는 한국의 몫이고, 한국 선교사들도 그 나라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최근 비슷한 경우를 또 만났다. 새마을운동이다. 1970년대에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우리에게는 골동품 비슷하다. 그런데 그 새마을운동이 예전의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개도국에서 ‘요즘’ 주목을 받고 있다면? 엇갈린 평가는 역시 우리의 문제일 뿐이고, 그들 나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있다면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에 ‘2016년 지구촌 새마을지도자 대회’ 첫날인 1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서 외국인 지도자 2명을 만났다(외국인 참가자는 40여 개국 350여 명).

▲탄자니아 음빙가 마을에서 새마을 지도자 카욤보 씨의 연설을 듣고 있는 주민들. 가운데 새마을기가 인상적이다.

 탄자니아의 헨리 미셸 오라우야 클레멘스 씨(71)는 영어를, 미얀마의 산 코 씨(54)는 미얀마어를 썼는데, 신기하게도 ‘새마을운동(Saemaul Undong·SMU)’이라는 한국어 발음은 매우 정확했다. 숱하게 쓴 덕분이리라.

 클레멘스 씨는 주지사까지 지낸 인물로 탄자니아 새마을운동 조직의 회장과 국제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마침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 각국의 새마을운동 네트워크인 ‘새마을운동글로벌리그(SGL)’도 발족했다.

 산 코 씨는 자신의 고향인 양곤 주 탄린 지역 따낫핀에서 하고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지붕 개량, 우물 파기, 다리와 길 공사, 축산(닭 500마리, 돼지 80마리, 소는 예정), 농촌기계화사업,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 금융업) 등등. 예전 우리 농촌의 새마을운동이 생생하게 떠오르지 않는가. 소액 금융업도 결국 우리의 ‘새마을금고’처럼 될 것이고.

 새마을운동과 만나게 된 경위를 물어봤다.

 “2009년에 한국에서 온 선교사를 만났는데 새마을운동을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때 움크랑가 지방의 주지사였는데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했다.”(클레멘스)

 “2012년 탄린 협동대학에 한국인이 와서 새마을운동을 소개한 것이 계기다. 내가 사는 마을이 시범마을로 선정되고 새마을지도자가 되면서 한국에서 연수도 받았다.”(산 코)

 새마을운동은 비교적 최근에, 한국과 한국인이 먼저 전파를 원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금은 50개국에서 전수를 요청하고 있다.

 평상시 본국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도 들어봤다.

 “한국에서 연수하면서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배웠다. 이것이 나의 사고방식도 바꿨다. 내가 배운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설득한다.”(산 코)

 “1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열어 다음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할 마을을 선정한다. 새로 선정된 마을을 방문해 새마을운동을 설명하고 교육한다.”(클레멘스)

 두 나라는 새마을운동의 모범국가가 됐다. 글로벌 새마을운동의 골간은 초청연수와 시범마을 조성. 탄자니아는 183명이 한국에서 새마을 연수를 받았고, 시범마을은 7개가 있다. 예산을 받지 못하는데도 자발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마을이 6개나 나타났다. 탄자니아 새마을회도 설립됐다. 운동을 하는 곳은 파파야, 카사바, 파인애플 등의 수확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지난해 3월 미얀마 양곤 주 따낫핀 마을에 만든 마을회관 준공식.

 미얀마의 한국 새마을 연수자는 193명. 201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주축으로 100개의 시범마을을 만들었다(전체는 105개). 현지 새마을연수원도 설립해 매년 500여 명을 교육하는 등 새마을운동을 미얀마 국가정책으로 만드는데 협력하고 있다.

 그들에게 새마을운동은 무엇인가. 클레멘스 씨는 “1970년대 탄자니아에도 우자마(Ujamaa)라는 사회변혁운동이 있었고 그 덕분에 주변국가보다 잘살았다. 이 운동이 새마을운동과 비슷했는데, 우간다의 침략 전쟁으로 무산됐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새마을운동정신이 좋다”고 했다. 산 코 씨의 대답은 간단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정신은 미얀마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바탕정신이다.”

 다른 사람들은 새마을운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을에는 새마을운동 회원과 가입하지 않은 시민들이 있다. 시민들도 운동에 호의적이다. 가끔 의견충돌이 있지만 대화로 잘 해결한다.”(산 코)

 “회원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새마을운동은 패러다임 변화의 도구라고 생각한다.”(클레멘스)

 변화가 없으면 평가도 없다. 산 코 씨는 “새마을운동은 물질과 정신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줬다”고 했고, 클레멘스 씨는 “공동체 활성화, 마을사업에 대한 열의, 협동심 강화 등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클레멘스 씨는 “주지사 시절, 처음 방문한 마을에 새마을운동을 소개했더니 바로 그날부터 시작하겠다고 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앞으로는 오늘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당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산 코 씨는 장관 표창.

 그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산 코 씨는 “소득증대와 소액 금융업 강화, 농업 기술 증진과 기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클레멘스 씨는 “정부, 지도자, 연수자, 금융전문가들을 모아 오늘처럼 새마을운동 발전을 위한 논의도 하고, 국립새마을연수원도 만들고, 경제전문가를 영입해 조직의 재정도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한 개도국 원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주민들 스스로가 잘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부족했고, 해당 국가가 부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새마을운동은 정부의 전략적 지원, 주민의 자발적 참여, 새마을지도자의 헌신으로 성공했다. 그래서 유엔도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차세대 지역개발모델로 새마을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99개국 7400여 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새마을교육을 시켰고, 26개국에 399개의 시범마을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당연히 글로벌 새마을운동에 적극적이다. 이번에 ‘새마을 지수(SMU Index)’를 개발해 나라별로 맞춤형 새마을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의욕도 밝혔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 새마을운동이 ‘K브랜드’로서 태권도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순진한 꿈인가.


 
▼영남대 ‘새마을’ 전문인력 양성… 국제협력단 등 취업 전망 밝아▼
 
‘블루오션’ 떠오른 새마을운동
 

영남대 새마을국제개발학과 학생들은 올여름 방학 기간에 라오스 숨퉁주 코케어 초등학교를 찾아가 교육봉사 활동을 벌였다.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에서 활동한 학생들도 있다. 영남대 제공

 모른다고 없는 게 아니다. 새마을운동을 블루오션으로 만든 곳도 있다.

 영남대는 지난해 지역및복지행정학과를 새마을국제개발학과로 개편했다. 새마을 정신을 국제개발에 접목했다. 입학정원은 75명이며 이 중 35명은 야간. 야간은 1976년 새마을운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역사회개발학과를 개설한 취지를 잇기 위해서다,

 이 학과의 한동근 교수는 “학생의 만족도도 높고 졸업 후 취업 전망도 밝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KOTRA, 수출입은행, 세계로 진출하는 비정부기구(NGO), 민간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부문 등을 취업 목표로 삼고 있다. 이 대학에는 외국인을 위한 ‘박정희새마을대학원’도 있고, 경운대는 새마을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1973년 ‘새마을과’를 만든 이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현재는 새마을봉사과), 새마을운동이 비판 받을 때도 도청 옥상의 새마을 깃발을 내린 적이 없다. 새마을운동 글로벌 전도사로 불리는 김관용 경북지사의 집무실에는 태극기와 경상북도기 외에 새마을기가 하나 더 있다.

 도의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은 국가보다 다양하고 조직적이다. 2012년 새마을세계화재단을 만들고 새마을 시범마을 조성과 해외봉사단 파견(11개국 30개 마을 447명), 외국인 새마을 연수(88개국 4517명), 대륙별 새마을연구소 설립(인도네시아, 세네갈, 베트남, 키르기스스탄), 국제학술대회인 글로벌 새마을포럼 개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도가 새마을운동의 정신적 바탕으로 제시하는 해야 한다(사명감), 할 수 있다(자신감), 하면 된다(신념)는 구호는 근면. 자조. 협동의 21세기 버전 같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