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외부평가 괴리 심화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의 실물경제 침체가 심각한 수준인데도 국가신용등급은 ‘나 홀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은 모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중국보다 1계단, 일본보다 2계단 높게 책정했다. 피치의 경우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을 AA―(안정적)로 유지하면서 중국은 1계단 낮은 A+, 일본은 2계단 낮은 A로 평가했다. 반면에 한국의 실물경제는 지지부진한 구조조정, 19개월째 이어진 마이너스 수출과 끝이 보이지 않는 내수 부진으로 2.8% 성장률 달성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이 같은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최우선 평가 기준이 해당국의 부채 규모와 상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국가채무(115.2%)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단기외채 비율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다. 특히 1998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세계 7위 규모인 37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는 등 대외 지급능력도 건전하다. 결국 높은 신용등급은 외국인투자가 편에서 ‘돈 떼일 염려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물경제와 괴리된 높은 신용등급이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정책으로 둘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칫 당국이 높은 신용등급에 취해 정책 오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잠재성장률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지만 정부는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일본, 중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자 한국 경제의 건실함을 방증한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듯 신용등급이 언제든 한꺼번에 급락할 수 있다는 점도 신용등급의 나 홀로 고공행진이 미덥지 않은 이유다.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축통화국과 달리 한국은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돼 외국인투자가들이 빠져나간다면 금융위기를 겪을 수 있다. 한국은 북한 위협이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시한폭탄으로 안고 있다. 또 정부부채는 양호한 편에 속하지만 가계부채는 심각한 수준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상황과 괴리된 신용등급 평가는 재정과 통화정책이 충분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한국의 신용등급이 높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것만으로 경제를 낙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