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생활하기 시작하며 모든 것을 알아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뿌듯했다.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 집 나가면 고생이란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몽골에서 가져온 적은 돈을 한 달도 안 돼 다 써 버렸다. 그때서야 엄마와 아빠랑 함께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한국에는 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들이 많았다. 온갖 일을 하며 다음 달 용돈 받는 날까지 버텼다. 식당에서 설거지 일부터 각종 전단지를 이리저리 붙이면서 다니는 일 등 육체적으로 힘든 일들을 하다 보니 역시 한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 동시에 돈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 그렇게 유학 생활이 시작됐다.
한국 대학의 방학은 몽골보다 훨씬 길다. 한국에서는 1년 중 반이 방학이지만 몽골에서는 1년 중 두 달 정도가 방학이다. 방학이 시작되면 기숙사뿐 아니라 학교 전체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텅 비어 왠지 우울한 느낌이 들곤 했다. 특히 겨울엔 더 그랬다. 몽골에서는 다른 계절보다 겨울이 길고 춥지만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 보이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는 몽골인들이 독립기념일과 12월 31일 또는 새해를 기다리며 들떠 있다. 또 몽골의 겨울은 눈이 많아 스키와 보드를 무료로 원하는 대로 타지만 한국에선 힘들다. 이 때문에 매년 겨울 방학 때 나는 몽골의 연말 분위기가 제일 그리웠다.
마치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때 국민 전체, 도시 전체가 그것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듯 몽골에서도 연말은 의미가 깊은 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해를 맞으며 소원을 빌면서 지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런 느낌을 받기는커녕 기숙사 지킴이로 남는 기분이 묘하게 들었다. 창밖으로 짐을 싸서 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언제 그들처럼 어디론가 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좋은 추억이 더 많았다. 같이 공부하는 유학생들과는 공통점이 많아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를 잘 배려하면서 지냈다. 어디를 가나 유학생들은 장벽 없이 서로 소통하며 재미있었다. 친구보다 더 가까운 가족 같은 기분으로 항상 서로를 도왔다. 덕분에 많은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며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 학생들은 놀 때 잘 놀고 열심히 공부할 때는 너무나 열심히 밤을 새워 가며 한다는 점이었다. 학교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에 자리 맡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으며 자리를 맡으려면 오전 6시부터 줄을 서야만 했다. 그때 제일 부러워했던 대상이 연구실이 있는, 즉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흔한 대학원생들이었다. 나도 하루빨리 대학원생이 돼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이젠 대학원생이 되어 도서관 자리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가끔은 공부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그런 날이 올 때마다 과거를 생각한다.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면서 좋은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