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문 전 대표는 이번 ‘회고록 논란’을 ‘기억력 문제’로 넘어가려고 했다.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처음에는 찬성한 것 같은데 나중에 기권하기로 한 것 같다”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자그마치 9년 전의 일이니 얼핏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남다른 ‘인권 감수성’을 가진 인권 변호사 출신이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치권에서 여야를 떠나 문 전 대표의 이런 애매한 태도를 비판하는 이유다.
문 전 대표는 논란 속에도 대선주자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회고록 공방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처신’으로 일관했다. 좋은 질문엔 답하고 불편한 질문은 무시하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전형이었다. 이런 태도는 18일 충청도 방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방문 취지 등 대선 행보 관련 질문에는 청산유수였지만 회고록 질문이 나오자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다 다시 대선 행보 질문이 나오면 멈춰서 답을 이어갔다. 회고록 질문에 “그 문제는 오늘 묻지 않기로 했죠?”라며 언제 누구와 합의했는지 알 수도 없는 기준을 들며 질문 범위에 선을 긋는 모습도 보였다.
문 전 대표는 최근 “모든 논란의 진실은 명백하게 가려졌다”며 스스로 논란의 종식을 선포했다. 하지만 ‘측근’과 당이 진흙탕을 굴러가며 ‘대리전’을 치르는 동안 당사자인 본인은 혹시나 진창에 빠질까 까치발로 사뿐거리는 꼴이었다. 현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은 회피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 하나 올리고 본인의 뜻인 줄 알라는 식의 태도는 ‘어느새 성역’이 돼버린 ‘또 다른 권력’처럼 느껴진다.
그는 이번 논란을 ‘문재인 타격주기’라고 규정했다. 모처럼 ‘건수’라도 잡은 듯이 예의 ‘종북 몰이’를 하는 여당을 보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회고록 논란에 대한 모든 의구심을 싸잡아 ‘여당스러운’ 공세로 치부하는 모습은 공교롭게도 그가 가장 비판해온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이견은 배신으로 싸잡고, 의혹만 나오면 그저 터무니없다고 일갈하는 ‘불통’에 대한 지적이 본인이라고 ‘로맨스’가 될 순 없다. 더욱이 내년 대권에 성큼 다가선 유력 주자라면 더욱 그렇다.
조영민 채널A 정치부 기자 y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