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륙 년 전에 한 이탈리안 식당 사장님에게 부탁하여 와인을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수강생이라고는 나와 와인 소믈리에가 되고 싶었던 그 식당의 매니저밖에 없었던 수업은 와인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다였다. 수업 마지막 날 사장님은 이런 당부를 했다. 와인은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혼자 마시지 말 것, 화가 나 있을 때도 마시지 말 것, 좋은 와인이란 비싼 품종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마시는 와인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 나는 그 말을 새겨들으며 테이블 위에 있던 코르크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참나무나 오크 껍질로 만들어진 코르크에 날짜와 장소, 그것을 같이 마신 사람의 이름을 쓰고 모으게 된 것은.
와인에 대해 젠체하는 미식가가 나오는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로알드 달의 ‘맛’. 미식가 리처드 프랏은 와인에 대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해 말하듯 한다. 예를 들면 “조신한 포도주로군요. 약간 수줍어하고 망설이는 듯하지만.” 혹은 “명랑한 포도주로구먼. 자비롭고 명랑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그 미식가와 만찬을 마련한 주인이 손님 앞에서 그날 특별히 내놓은 포도주의 품종과 연도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하게 된다. ‘맛’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지난 명절 때 아버지께서 선물로 받아온 와인 한 병을 피아노 위에 잘 눕혀 두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 유레이즈미업(You Raise me up). 감탄사가 나올 만큼 훌륭한 와인은 아니다. 그러나 일을 끝낸 후 여는 와인이라면 밝고 달콤하며 꽃향기가 훅 터질 것이다. 딴생각하길 좋아하는 나는 ‘나를 일으켜 세워 주는 것’에 관해 떠올려 보게 될지도 모르고. 다분히 개인적인 기록을 가능케 하는 것, 와인의 산화를 막는 역할 외에도 코르크는 그런 면에서 꽤나 쓸모가 있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