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논설위원
“2004년 독도 영유권 문제로 남측과 일본이 외교적 마찰을 빚던 때가 있었지요. 그 무렵 우리(북한)가 ‘독도 문제에 남측 편을 들며 한목소리를 내줄까’ 하고 남측에 물었습니다. 남측에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더군요.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어리둥절해하는 A 씨에게 북측 인사는 독도 이슈까지 협의할 정도로 남북이 가까우니 교류 중단을 걱정 말라고 했다.
A 씨가 최근 필자에게 들려준 ‘독도 협의’ 이야기는 ‘독도는 그냥 두면 긴 시간과 함께 점점 한국의 영토로 응고되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는 송민순 회고록과도 일치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북한을 따르는 종북(從北)보다는 북한과 잘 통한다는 통북(通北)이 더 중립적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종북이냐, 통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너무 당연해서인지, 몰라서인지 누구도 언급조차 않는 ‘자유 보장과 재산권 보호’라는 시장경제의 핵심 가치가 죽어간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 핵심 가치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북한과 협의하는 정부에 평등과 공정은 더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민주화에 휘둘리며 자유와 재산권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제도니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니 하는 제도가 있다. 정의로워 보이지만 자유와 재산권을 압박하는 대표적인 예다. 유정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제도는 경제를 하나의 조직으로 보고 기업인에게 조직의 구성원처럼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정부가 정한 ‘성과 달성’이 유일한 목표인 계획경제와 다를 게 없다.
자유 보장과 재산권 보호라는 잣대를 ‘좌(左)순실, 우(右)병우’에 적용해 봤다면 의혹을 진작에 털 수도 있었다. 최순실 씨가 개입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800억 원을 출연한 기업들 중 어느 곳도 자유의지로 돈을 낸 곳은 없었다. 최 씨 때문에 시장경제는 퇴보했다.
우병우 수석은 처가의 땅을 넥슨에 팔면서 김정주 회장에게 부동산을 사 달라고 압력을 넣었는지 검찰이 검증했어야 한다. 압력 때문에 김 회장의 재산권이 침해됐다면 유죄, 그렇지 않다면 무죄다. 결과에 책임지면 된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판단을 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건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의지가 이 정부에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정의롭다는 착각
대선 주자도 없는데 공정성장, 포용성장, 혁신성장 등 정체불명의 성장론이 쏟아진다. 하나같이 시장경제의 실패를 보완하겠다고 주장한다. 분배를 통해 양극화 문제를 줄이고 대기업의 갑질에 철퇴를 놓는 정책이 나올 것이다. 다리가 무너질 판인데 난간만 손보겠다는 격이다. 시장경제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지만 우리는 정도(正道)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내가 집권하면 정의로운 정부가 될 것이라는 착각, 그게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초래했다.
홍수용 논설위원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