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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독서일기]소리 내 읽고 싶은 구절로 가득한, ‘음유시인’의 장편소설

입력 | 2016-10-28 03:00:00

레너드 코언의 소설 ‘아름다운 패자’




 레너드 코언은 싱어송라이터로서 잘 알려진 음유시인이다. 그는 시집과 장편소설을 포함해 스무 권에 가까운 책을 냈다.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딜런이나 코언이 일생 열정을 바친 작업이 문학적 작업이었느냐, 혹은 노랫말을 문학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 수도 있겠다. 한데 이런 논란에는 편견이 관여한다.

 글쓰기에서도 소리의 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학의 자장력이 눈으로만 읽는 문학에서 들리는 문학으로 열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가 살아 있지 않는 문학은 생명성이 사라지고, 제도나 권력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문학은 소외를 낳기 때문이다.

 예부터 시의 끝은 음악에 닿으며 훌륭한 음악의 끝자락엔 시가 남는다는 점에서 소리와 ‘시문학’의 파장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호흡을 같이해 왔다.

 그런 점에서 노벨 문학상은 한 명의 뮤지션에게 수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환멸과 치욕으로부터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준 한 시인에게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코언이나 딜런의 글쓰기가 시를 전달하기 위해 소리를 찾는 자들의 작업이라면 그들이 시인으로 불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문학의 전당은 아름다움에 대한 헌신을 예찬하는 자들에게 바쳐져야 한다.

 코언의 ‘아름다운 패자’(사진)는 형식상 장편소설이지만 시처럼 흘러간다. 이름 없는 남자와 이름뿐인 여자. 그리고 그들의 친구 F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서사는 너무나 위험해서 아름답고 불온하다.

 스토리를 구구절절 분해할 필요는 없다. 책에는 소리 내어 읽고 싶은 구절들이 가득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입술을 벌리고 문장을 받아 마시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오는데 그건 문장마다 소리가 살아야 문학성이 살아난다는 생명성에 대한 적절한 신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낭독해 보자.

 “오 친구, 내 영혼의 손을 잡고 나를 기억해줘. 네 마음을 섬세하게 읽고 너의 미숙한 꿈에서 휴식을 얻으려 했던 한 남자가 너를 사랑했어. 내 몸을 생각해줘.”

 끝부분에서는 ‘이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에 의해 지어지고, 누군가에 의해 지워지는 세계. 이름이 없는 세계의 슬픔, 이름을 숨긴 세계의 환멸, 이름이 사라진 세계를 꿈꾸는 사람의 일. 그게 시의 길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글쓰기의 가능성은 시의 영역에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김경주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