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그러나 위로의 순간들이 지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곧, 사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삶에 고통과 상처를 남기는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철학자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고통을 직시하고자 하는 필요성이 진실의 조건이니까요.
비뚤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고 북돋는 말은 오히려 무겁게 느껴집니다. 또 다른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수자의 시구처럼 자기 다짐과 굳건한 의지로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처주지 않으며 사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자신이 받았듯이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데렐라는 어릴 적부터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 받는 삶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모욕과 폭력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육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 외상으로 마음도 상처투성이입니다. 다행히도 마법사 아줌마의 도움으로 왕자님과 행복하게 맺어집니다.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의 ‘속편’은 어떻게 될까요. 이야기의 이치에 맞는 속편은 이렇게 전개되지 않을까요. 우선 왕자님의 삶은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신데렐라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지만, 상처주지 않을 줄은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상처받을 왕자 역시 그것을 되갚으려 하겠지요. 더구나 이제 신데렐라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왕세자비니까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심한 상처를 줄 수 있겠지요.
운명의 장난으로 태어날 때부터 상처투성이의 삶을 살아간 ‘미운 오리 새끼’의 이야기도 그 속편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백조의 정체성을 되찾았으니 아름다운 백조를 짝으로 맞겠지만, 상처받는 일에 익숙해진 백조가 자기 짝에게 상처를 주며 관계를 어렵게 끌고 가거나 그르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처받는 일에 익숙해지면 그 과정을 견뎌낸다 해도 상처주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색의 계절, 이 아련한 가을의 끝자락에서 생각해 봅니다. 오랜 상처의 아픔을 지닌 사람에게 ‘아프니까 인생이다’라며 앞을 보고 참고 견디라고 한다면, 또한 삶을 오로지 굳은 의지로 극복하라고 한다면, ‘사후 약방문’ 식의 위안이 아닐까요.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