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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난 사람]둘이서 한마음… 아름다운 ‘스키 2중주’

입력 | 2016-10-29 03:00:00

시각장애스키 양재림 선수와 가이드 고운소리 씨




8월 뉴질랜드에서 CF 촬영을 위해 스키를 타고 있는 시각장애 스키 국가대표 양재림(오른쪽)과 그녀의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두 사람은 “한 컷을 찍기 위해 20번을 연속해 타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이 타 본 것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SK텔레콤 제공

 고요 속에 스키를 타는 이들이 있다.

 ‘선수’가 ‘가이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 소리를 놓치면 경기를 망치는 것은 물론,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떠들썩한 방송이나 제설 장비의 소음 등은 허락되지 않는다. 스키 플레이트와 눈이 만들어 내는 ‘쉬익∼’ 소리와 펄럭거리는 ‘기문(旗門·스키 회전 경기에서 코스를 설정하기 위해 세운 기·게이트라고도 함)의 깃발 소리가 전부다.

 그 속에 무선 송수신 장비를 통해 선수에게 전달되는 가이드의 목소리. 가이드의 임무는 먼저 지나온 길을 선수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가이드가 “다운”이라고 외치면 선수는 자세를 낮춰 회전(턴)을 준비한다. “턴”에 이어지는 “업”은 기문을 잘 통과했으니 자세를 풀라는 신호다. 쉴 새 없이 “다운” “턴” “업”이 반복된다.

 선수는 눈이 나빠 기문을 볼 수 없다. 가이드가 입은 형광 상의를 어렴풋이 보고 따라간다. 선수의 안전을 위해 가이드와의 거리가 기문 2개를 초과하면 실격되기 때문에 가이드는 수시로 뒤를 보며 선수 상황을 점검한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가이드와 선수는 같은 움직임을 반복한다.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스키 국가대표 선수인 양재림(27·국민체육진흥공단)과 그녀의 가이드 고운소리(21·국민체육진흥공단·이화여대 스포츠과학부)는 그렇게 한 몸인 듯 설원을 누빈다.



둘이서 한마음

 “처음 만났을 때는 성격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더 보자고 했죠. 지금은 전혀 아닌 것 같은데(웃음) 그때는 차분함 같은 게 많이 느껴졌어요.”(양)

 양재림이 선수의 길로 들어선 것은 2010년 말. 균형 감각을 키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스키를 탔던 그가 대입을 준비하느라 한동안 스키장을 찾지 않을 때였다. 이화여대 동양화과에 입학한 뒤 스키를 더 배우고 싶었던 양재림은 어머니와 함께 대한장애인스키협회를 찾아 코치 소개를 부탁했다. 협회는 “취미를 위해 코치를 붙여줄 수는 없지만 선수로 뛴다면 도울 수 있다”고 했다. 메디컬 테스트 결과 그는 근력과 지구력 등 기본적인 자질이 뛰어났다. 지금까지 겨울패럴림픽 설상 종목에서 은메달(2002년) 하나가 전부였던 협회로서는 ‘굴러온 복덩이’였다.

 2011년 2월에 열린 전국장애인겨울체육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양재림은 2014년 소치 겨울패럴림픽 메달을 목표로 훈련했다. 소치에서는 아쉽게 4위를 했고 2018년 평창 패럴림픽 메달을 기약하며 다시 설원을 달렸다. 그 사이 가이드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잠깐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같이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협회는 양재림을 위해 지난해 6월 가이드를 공개 모집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참에 가이드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왠지 꼭 해 보고 싶어 가족들을 설득했죠. 후보가 여럿 있었는데 운 좋게 제가 뽑힌 거죠.”(고)

 사람들이 대개 ‘소리’로 부른다는 고운소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스키 선수로 활약했다. 스키가 좋아 관련 일을 직업으로 삼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오빠도 선수 출신인 ‘스키 가족’이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고, 지난해 스페인 하카 겨울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하지만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에서 선수로 대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2015∼2016시즌을 끝으로 학업에 전념하기로 했을 때 새로운 기회를 만났다.

 “가이드는 웨이트 트레이닝부터 같이해야 돼요. 그래야 서로의 근육 상태 등을 알 수 있으니까요. 경험에 비추어 보면 비시즌 때 안 만나다 시즌이 되면 그 사이에 서먹서먹해지더라고요. 생활까지 같이하는 가족 이상의 관계가 돼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소리가 바로 그런 가이드죠.”(양)

 고운소리가 ‘양재림의 파트너’로 결정된 직후인 지난해 7월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장애인 알파인스키팀을 창단했다. 덕분에 둘은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함께 지내게 됐다.

 “만난 지 15개월 정도 됐는데 얼굴 안 본 날은 한 달도 안 될걸요. 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니’라고 불렀어요.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지내다 보며 알게 됐지만 언니는 굉장히 신중한 성격이에요. 말은 별로 없고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고. 반면에 저는 무한긍정 스타일?(웃음) 언니가 성적에 대해 신경을 쓰면 제가 ‘걱정 마 언니, 잘될 거야’라고 우겨요. 그러면 언니도 어느새 걱정을 조금은 덜어내는 것 같아요.”(고)

 “편하게 느껴서인지 얘가 요즘엔 저를 부를 때 ‘재림 씨’라고 하기도 해요. 언젠가는 ‘재림아’ 할지도 몰라요.”(양)

 “(손사래를 치며) 그럴 일은 없어요. 언니도 장난인 걸 알아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렇죠? 재림 씨.”(고)



세상을 감동시킨 두 사람

 두 사람은 최근 한 이동통신사의 CF에 나오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장애인 스포츠 선수가 대기업 광고의 메인 모델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채영훈 SK텔레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역에서 ‘연결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를 찾다 양재림, 고운소리 선수 스토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처음 선보인 CF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채 팀장은 “페이스북, 유튜브,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한 CF 영상 조회 수가 25일 현재 750만 건이 훨씬 넘었다”고 전했다. 지상파 CF는 23일로 방영이 끝났고, 케이블TV와 인터넷TV(IPTV)도 곧 끝나지만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버전의 영상을 계속 볼 수 있다.

 “7월쯤 CF를 찍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생각할수록 대기업이 장애인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준 게 신기합니다. 8월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마친 뒤에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작과 매체 집행 비용 등이 대략 얼마인지도 들었고 많은 분이 고생하셨는데 사람들이 장애인 스포츠라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었어요.”(양)

 “CF가 완성되고 인터넷에 관련 동영상이 처음 올라온 날, 언니나 저나 밤늦게까지 잠을 못 잤어요. 친한 친구들한테는 좋아요, 댓글 달기, 공유 등 ‘3종 세트’를 모두 하라고 압박도 했죠. 그런데 첫날부터 조회 수가 몇십만 건이 되더라고요.”(고)

 “반응이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당장은 기분이 좋았지만 갈수록 부담감이 커지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스키와 우리를 알게 됐는데 2018년 평창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양)

 “이것 봐요. 언니는 걱정이 너무 많아요. 무관심보다는 훨씬 나은 건데. 저는 언니를 믿어요. 진짜 악바리거든요. 언니가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걸 볼 때마다 저도 힘을 얻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경험을 통해 CF를 대충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그 짧은 장면을 찍으려고 얼마나 많은 분이 고생을 하시던지….”(고)

 “이틀 동안 촬영했는데 한 컷을 위해 스키를 스무 번 타기도 했어요. 선수들이 쉬지 않고 스무 번을 타는 일은 훈련 때도 없어요. 한 번을 타더라도 리프트로 이동하며 조금은 쉴 수 있는데 글쎄, 스노모빌까지 준비를 해 놓으셨더라고요.”(양)

 “실제 경기처럼 코스가 길지는 않았지만 내려오자마자 스노모빌 타고 다시 올라가는 일을 반복했어요. 솔직히 힘들었지만 ‘재림 씨 좋아요, 소리 씨 잘하고 있어요’라는 현장 스태프의 목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열심히 하게 됐죠.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올라 있는 5분짜리 영상에는 제가 우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못생겨 보였어요. 그래서 빼달라고 했더니 담당자께서 ‘이거 하나 빼려면 우리는 마흔 명이 울어야 돼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혼자 우는 게 낫죠’ 하며 포기했습니다.(웃음) 자꾸 보니 이제는 정이 가요.”(고)



부상을 넘어 비상을 꿈꾸다

양재림(왼쪽)과 고운소리. 두 사람은 경기와 훈련은 물론이고 생활도 거의 함께하는 가족 이상의 사이다. 양재림이 1월 부상을 당해 재활을 할 때도 고운소리는 늘 곁에 있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가이드가 앞서 달리지만 레이스의 결과는 뒤따르는 선수에게 달렸다. 고운소리와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양재림의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양재림은 지난해 8월 뉴질랜드 대회에서는 회전과 대회전 종목에서 정상에 올랐다. 세계 강호들이 대거 참가한 지난해 12월 캐나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알파인스키선수권대회도 회전과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올해 1월. 둘은 패럴림픽에 버금가는 수준인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1월 19일에 대회전 경기가 있었어요. 아침에 훈련을 할 때만 해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는데 출발이 다가오면서 달라지더라고요. 언니가 그랬어요. ‘나를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빨리 달려라. 알아서 따라가겠다’고. 처음 있는 일이었죠. 엄청난 기가 느껴졌어요.”(고)

 고운소리는 그날 양재림이 레이스 중간부터 “고”를 외쳤다고 기억했다. 속도를 낮추라는 “백”은 종종 했어도 빨리 가라는 “고”는 처음이었다. 슬쩍 돌아봤더니 이전에 못 보던 빠른 속도로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게 화근이 됐다. 양재림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넘어졌다.

 “급경사에서 평지로 확 바뀌는 지점이 결승선이었어요. 스피드가 너무 붙은 상태에서 갑자기 멈추려다…. 태어나서 그런 통증은 처음이었어요. 나중에 병원에서 보니 오른쪽 정강이뼈가 완전히 떨어져 나갔어요. 의료진 얘기로는 그 부위가 골절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던데 그만큼 충격이 컸나 봐요.”(양)

 “비록 울음이었지만 언니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 처음 봤어요. 저도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죠. 무선으로 감독님과 코치님을 부른 뒤 은박지로 언니 몸을 싸서 체온을 유지하는 등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줄었는지 울음을 멈춘 언니가 기록 좀 보고 와 달라더군요. 2위와 4초 이상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1등이었어요. 언니는 그 얘길 듣더니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어요.”(고)

 “두 차례의 기록을 합산해 순위가 결정돼요. 1차 시기에서 4초 이상 차이가 났다면 이변이 없는 한 1위였는데…. 눈앞에서 메달이 날아간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앞으로 스키를 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어요.”(양)

 현지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은 양재림은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국내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양재림은 1월 말부터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다치지 않은 고운소리도 늘 그 곁을 지키고 있다. 힘들고 지루한 재활은 11월 초면 끝난다. 양재림이 “8월에 CF 촬영을 할 때 다친 뒤 처음 눈 위에 서는 거라 겁이 많이 났다”고 하자 고운소리가 “거 봐 언니, 내가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라며 웃는다. 그 말에 양재림도 “맞아요. 막상 달려 보니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재활이 잘된 것 같아요”라며 따라 웃는다.

 “솔직히 마음이 급해요. 10개월가량 제대로 훈련을 못했으니까요. 눈 위에서 ‘실전용 근력’을 키워야 하는데…. 게다가 평창 패럴림픽이 열리는 코스에서 탈 기회가 앞으로 몇 번 없다고 해요. 홈 어드밴티지를 누리지 못하는 거죠.”(양)

“홈 어드밴티지가 별로 없는 건 맞아요. 그래도 언니는 잘해 낼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최선을 다할 거고요. (양재림을 보며) 언니, 잘할 수 있어. 걱정 마!”

양재림이 무릎 속에 있던 금속 고정판으로 만든 목걸이.

 인터뷰가 끝날 무렵 고운소리는 양재림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기자에게 보여 주라고 했다. 동강 난 뼈를 이어줬던 무릎 속의 금속 고정판을 목걸이로 만든 것이었다.

 11월 7일 네덜란드로 출국해 훈련을 재개하는 두 사람은 지난 주말 제주도로 둘만의 휴가를 다녀왔다. 모처럼 바다를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고 각오도 다졌다.

 “2018년 평창에서 이 목걸이 위에 꼭 메달을 걸고 싶어요.”(양, 고)

 한 몸인 듯 눈 위를 달리는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