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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봇물 터진 거국내각 요구… 靑은 침묵속 부정적 기류

입력 | 2016-10-29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정국 수습, 답을 찾아라
거국중립내각 실현 가능성 있나




  

심각한 국무위원들 황교안 국무총리(앞줄 오른쪽) 등 국무위원들이 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순실 게이트’ 파장이 낳은 ‘거국중립내각’ 요구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

 거국중립내각은 내각 총사퇴에 이어 현 정부 남은 임기를 이끌 총리와 중립내각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의 근원인 ‘국무위원 인사권’을 포기하라는 2선 후퇴 요구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정치적 탄핵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의 거국내각 구성 요구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와 ‘민평연’은 28일 “여야 대표와 국회의장 협의로 책임총리를 임명하도록 하자”며 구체적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 미래 권력 vs 현재 권력

 

거국내각은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26일 처음 공론화했다. 여기에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26, 27일 연이틀 긴급성명을 내며 동조하면서 세가 커졌다. 이후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민주당 의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비슷한 주장을 이어가면서 미래 권력(여야 대선 주자) 대 현재 권력(박 대통령)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발전했다.

 이들이 말하는 거국내각이란 크게 현 대통령은 외치를 맡고 총리가 내치를 맡는 통치 구조 형식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가깝다. 총리를 현 대통령이 임명하되 그 총리가 내각 구성의 전권을 쥐는 방법과, 대통령이 국회에 총리 및 내각 구성의 전권을 주고 여야가 합의를 통해 뽑는 방식으로 크게 구분된다. 현재 거국내각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국회에서 총리와 내각을 선출하는 방식을 거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거국내각을 구성하되 내년 12월 19일 대선 때까지 실험적으로 이원집정부제를 해보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른바 개헌을 염두에 둔 거국내각이다. 김 교수는 2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원내가 됐든 원외가 됐든 새 총리를 중심으로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내년 대선까지의) 1년 4개월 동안 국정을 운영해 공동 책임을 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제의 폐해를 이번 사태로 절감했다고 해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무조건 개헌하자고만 하지 말자는 얘기다. 김 교수는 “정말로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가 우리 사회에 맞는 것인지를 이 기회에 한번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며 “그러면 지금의 국정 동력도 살리면서 개헌을 위한 담론도 끌고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야권 대선 주자들이 거국내각을 주장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먼저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 요구에 뒤따르는 역풍을 고려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례에서 보듯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는 국가적, 정치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후폭풍이 뒤따른다. 탄핵을 주도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은 그해 총선에서 완패했다. 최근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 순위에 ‘탄핵’ ‘하야’가 계속 오르고 있을 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지만 정작 야권에서는 탄핵을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대통령의 하야로 인한 극심한 정치적 혼란보다는 내년 대선까지 안정적이고 중립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있는 내각에 주자들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헌법 68조 2항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실제 하야한다면 고작 두 달 후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야권 관계자는 “문 전 대표는 당은 장악했지만 아직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박 대통령이 퇴임할 경우 친박(친박근혜)과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동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정계 개편이 뒤따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60일간 대통령권한대행이 될 황교안 국무총리가 공정한 대선 관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거국내각 요구에 한몫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궐위에 수반되는 리스크는 피하면서도 ‘정치적 탄핵’인 거국내각을 통해 박 대통령의 권력을 봉쇄하려는 의미도 깔려 있다.


○ 실현 가능성 없는 주도권 싸움?

 헌법학자들은 거국내각이 구성된다고 해도 대통령과의 법적인 권한 충돌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대체적으로 입을 모은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각료제청권에 따라 총리가 추천한 장관 후보자를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다만 최종적인 임명권은 명백하게 대통령에게 있는 만큼 거국내각 구성을 위해선 대통령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은 데다 총리 추천과 내각 구성에 여야가 합의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야권의 제대로 된 인사가 집권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대선을 1년여 남긴 시점에 기울어져 가는 현 정부 내각에 합류할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론도 있다. 거국내각 구성이 정국을 수습하기보다 더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또 “문 전 대표가 거국내각을 촉구하고 나선 이후 민주당 지도부가 이에 동조하거나 국회추진기구 등 구체적인 후속 조치를 요구하지 않는 까닭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와 민주당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국내각 카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실제 이날까지 민주당 지도부는 거국내각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당은 특검 수사를 앞세워 ‘현재’를 장악하고, 문 전 대표 등 대선 주자들은 수습책으로 ‘거국내각’을 제시하며 ‘미래’의 의제를 선점하려는 투트랙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여당 비박(비박근혜)계 역시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보다는 박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와 함께 거국내각론을 계기로 개헌 논의의 불씨를 살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재원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정치권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주장에 대해 “그런 다양한 의견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미 박근혜 대통령께 많이 보고를 드렸다”고 말했지만 청와대의 견해를 내놓진 않았다. 다만 청와대는 거국내각에 일단 부정적인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중립내각이 1년 넘게 장기간 국정을 이끈 사례도 없다. 그러나 “거국내각의 전례가 없다”는 논거가 방어막이 될지 역시 미지수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회복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온 나라가 패닉에 빠진 만큼 어떤 형태로든 정상적 국정 운영을 회복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길진균 leon@donga.com·유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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