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최순실 전격 귀국]007작전 뺨친 극비 조기입국
최순실씨 변호인 회견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가 30일 전격 귀국한 직후 최 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가 법무법인이 있는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로비에서 최 씨의 귀국 배경과 검찰 출석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도착 16분 만에 공항 밖으로 이동
최 씨는 ‘007 작전’처럼 극비로 입국했다. 인천국제공항 관계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최 씨는 미리 짠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듯 도착 후 불과 16분 만에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영국 런던발 인천행 영국항공 BA017편을 이용한 그는 이날 오전 7시 58분경 공항 탑승동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공항 여객터미널로 이동한 최 씨는 8시 10분경 자동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커다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턱까지 옷깃을 올려 얼굴을 가린 최 씨는 짙은 청색 패딩과 검은색 바지를 입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오전 8시 14분경 터미널 1층 D입국장에 최 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양복 차림의 남성 4명이 최 씨를 알아보고 다가갔다. 1명은 최 씨 앞에, 2명은 양옆에, 나머지 1명은 뒤에서 최 씨 가방을 들었다. 8번 출입문으로 나온 최 씨 일행은 건너편에 대기 중이던 회색 K5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현장에 있던 세관 직원 등도 최 씨의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을 잘 몰라 최 씨의 입국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최 씨는 서울 모처에서 변호인 서너 명과 소환 조사를 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이날 오전 9시 반 기자회견을 열고 “최 원장(최순실)이 건강이 좋지 않고 매우 지쳐 있다”며 “검찰에 하루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귀국 당일에는 최 씨를 소환하지 않았지만 ‘최 씨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귀국 이튿날인 31일 검찰 청사로 최 씨를 부르기로 했다.
최 씨가 영국을 경유해 귀국한 것은 최 씨 얼굴을 알아본 시민들의 과격한 폭력이나 불상사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최 씨에게 ‘지금 당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 대통령도, 검찰도 못 한다. 보호하면 비선 실세라고 할 것 아니냐. 당신이 행동으로 하나하나 정리해야 한다’고 말해줬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 씨가) 덴마크, 벨기에에 있다는 온갖 소문들이 돌았다”며 “언론 추적을 본인이 견디기 어려워 독일에서 런던으로 간 뒤 귀국했다”고 못 박았다.
최 씨의 귀국은 궁지에 몰린 청와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사태 수습을 미루면 박근혜 대통령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게 되는 만큼 최 씨의 귀국 일정을 앞당겨 검찰 수사를 통해 사건을 서둘러 매듭짓겠다는 의도란 분석이 제기된다. 법조계에서는 “최 씨는 공직자가 아닌 ‘사인(私人)인 만큼 현재까지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도 그에게 적용되는 형사처벌 죄목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며 “이번 정부가 끝나기 전에 수사, 재판을 받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인천=황금천 kchwang@donga.com·허동준·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