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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보수 “난생처음 反정부 시위 나섰다”

입력 | 2016-10-31 03:00:00

[최순실 게이트/들끓는 비판 여론]국정농단 사태에 충격-배신감
“투표한 것 후회” 촛불집회 대거 참가… 與의원실에도 “지지 철회” 거센 항의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 국정 개입 의혹을 바라보는 보수층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야권이 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비판해도 박근혜 대통령을 감싸왔던 적지 않은 보수층은 이번 최 씨의 ‘국정 농단’을 지켜보며 충격뿐만 아니라 배신감마저 보이고 있다.

 대표적 우파 논객인 조갑제 씨마저 28일 조갑제닷컴에 쓴 ‘하야냐 계엄령이냐로 가기 전에’라는 글에서 “이번 사건의 주체는 박 대통령이다.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당연히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이어 “국민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직의 권위가 수준 이하의 인격을 가진 최순실에 의해 망가진 점”이라고 지적했다.

 권위와 시스템을 진보 진영보다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보수층의 시각에서 민간인에 불과한 최 씨가 외교, 안보 등 국가기밀이 담긴 자료를 받아보고 정부 인사(人事)에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에 심한 당혹감과 허탈감을 느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30일 “한마디로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이 25일 강연에서 “강남에 사는 웬 아주머니가 대통령 연설을 뜯어고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냐”고 말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집회·시위에 참석한 경험이 없는 보수 성향의 시민들까지 동조하고 있다.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국촛불대회에도 “살다가 시위에는 처음 나왔다”고 밝힌 보수 성향의 참석자들이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 중앙당과 각 의원실에도 25일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통해 최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자 “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을 후회한다. 지지를 철회하겠다” “대통령과 갈라서라” 등의 항의전화가 하루 평균 수십 통씩 쏟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30일 낸 소식지에서 “한 대구 어르신이 ‘내 차 안에서 혼자 소주 2병 마셨는데, 내가 지금 이를 갈고 있어. 최순실 들어오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라고 했다”고 여권의 핵심인 대구 민심을 전했다. 보수적 개신교단도 최 씨가 ‘사이비 종교’와 연관돼 있다는 점을 들어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분위기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당시만 해도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지만 이후 의혹이 줄줄이 제기되자 보수층이 ‘패닉’에 빠졌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보수의 위기가 아닌 박근혜 정부의 위기로 규정해 선을 긋겠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길진균 leon@donga.com·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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