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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의 실록한의학]왕의 다이어트 비방 ‘우전차’

입력 | 2016-10-31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최근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로 논란이 한창이다. 과연 조선시대 왕들도 다이어트를 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왕들 중 우선 꼽을 수 있는 비만인은 늘 공부에 열중해 운동량이 부족했던 세종이다. 즉위년 10월 9일 태종은 이렇게 권유했다. “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肥重)하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몸을 존절히 하셔야 하겠으며, 나는 장차 주상과 더불어 무사를 강습하려 한다.”

 태종의 말인즉 세종이 운동을 안 해서 살이 쪘으니 내가 직접 무술을 가르치면서 운동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실제 30세 이후 당뇨병으로 평생을 고생한다. 비만 때문이었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도 비만이었다. 뒷날 불행한 부자 사이로 변하지만 승정원일기에서 살찐 아들을 걱정하며 처방을 얘기하는 영조의 모습은 영락없는 아버지다. 의관에게 당시 사도세자가 복용하고 있던 육미지황원이 행여 비만의 주범이 아닌지 묻기도 하고 아들(사도세자)이 지나치게 대식가이며 행동이 느리다는 푸념까지 한다.

 이때 의관들이 사도세자의 다이어트 비방으로 제시한 처방은 바로 녹차였다. 특히 곡우 이전에 채취한 우전차를 권했다. 영조는 혹시 부작용은 없는지 세심하게 묻는다. 신하들은 식사 후에 복용하면 문제가 없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기를 소모해 피곤해질 수 있다며 생강과 천초라는 약을 곁들여 복용할 것을 권했다. 중국인이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비결이 고유의 차 문화 덕택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녹차의 카테킨 성분이 소화기관 내에서의 콜레스테롤 흡수를 막고 지질의 체내 축적을 억제해 지방간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동의보감’에는 더 솔깃한 대목이 나온다. “곤포는 기를 내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먹으면 살이 빠진다. 나물을 무쳐서 먹는 것이 좋다.” 곤포는 미역, 다시마처럼 띠 모양으로 생겼으며, 물살이 약한 바다에서 자란다. 동해에 널리 분포돼 있는데 주로 갑상샘(갑상선) 질환에 사용한다. 갑상샘 호르몬이 기초대사, 성장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므로 살이 빠지는 효과는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갑상샘은 우리 몸의 에너지를 열로 바꾸는 보일러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를 태워 체온을 올림으로써 체중을 감소시킨다.

 팥도 신장의 소변 배출 기능을 도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팥의 가장 큰 효력은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부기를 없애는 것. 임신 뒤 부기가 있는 이들이 팥을 먹으면 효과가 크다. 사실 한의학의 최강 다이어트 약은 마황이다. 현대 의학도 마황에서 추출한 에페드린 성분을 천식약(감기약)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이 에페드린이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오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에페드린은 피부의 땀구멍을 열어주고 열량 소비를 촉진하는데 잘못 사용하면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왕실 의관들이 왕에게 이런 극적인 약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건강한 다이어트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건강한 다이어트식을 원한다면 녹차, 곤포, 팥을 기억하는 게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