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청에 마련된 조기 투표소에서 7일 투표를 마친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한 흑인 여성에게 손을 뻗어 악수하고 있다. 사진 출처 백악관 홈페이지
최영해 국제부장
2012년 6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를 백악관에 초청해 전임 대통령 부부 초상화를 공개하고 벽에 거는 행사를 열었을 때다. 공화당인 부시가 “오늘 이렇게 부시 가문 14명을 초대해 먹여줘서(feeding) 감사하다”고 분위기를 돋우자,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여러 채널을 감상할 수 있는 프리미엄 스포츠TV 패키지를 (전임 대통령이) 남겨놓고 가서 고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행사장엔 폭소가 넘쳤다. 전직 대통령을 이렇게 예우하니 부시 대통령 부부가 지난달 말 워싱턴 내셔널 몰 스미스소니언의 국립흑인역사박물관 개관식에서 오바마 부부와 자리를 같이 하며 축하했을 것이다. 현직과 전직 대통령이 으르렁거리는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오바마는 2011년 7월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젊은 백악관 트위터 팔로어 170여 명을 백악관에 초대해 타운홀 미팅을 갖고 젊은이들과 국정 현안을 놓고 트위터 토론에 나섰다. 이후 그에겐 ‘SNS 대통령’이란 별명이 생겼다. 의회의 극한 대립으로 빚어진 정부 셧다운(폐쇄)을 막기 위해 여야 지도부를 백악관으로 초청하고, 밤늦게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설득하며, 식당에서 한턱내겠다고 제안하는가 하면, 골프장에서 정적과 함께 라운딩하며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대통령이었다.
이달 초 대통령선거 조기 투표를 위해 투표장이 마련된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청에 들렀다가 줄 서 기다리는 흑인 여성에게 손을 뻗어 잡는 장면과 백악관에서 열린 ‘히스패닉 유산의 달’ 행사에 참석한 히스패닉 여성 록사나 기론이 오바마를 꼭 껴안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선 대통령의 인간미가 물씬 묻어난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임기 말 오바마 지지율이 55%까지 솟구치는 것은 대통령의 장기 정책을 국민들이 마침내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백악관은 설명한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을 지낸 토미 비어터는 “오바마는 8년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그는 근본적으로 괜찮은(decent)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핵심 측근이 한 사람 있다. 밸러리 재럿(59)이란 여성으로, 그가 1991년 시카고 시장실 부비서실장일 때 미셸 오바마를 시장 보좌역으로 채용한 인연으로 만났다. 오바마는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재럿을 백악관 선임고문에 임명하고 대통령집무실 바로 옆에 방을 줬다. 퇴근 후 가끔 재럿의 집에서 오바마 부부와 그가 함께 피자를 먹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막역한 사이다. 공식적으로 자리를 줬으니 비선 실세라는 뒷말이 나올 리 없다.
오바마가 대중과 공감하는 스킨십과 좁은 탁자에서 참모들과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다. 의회를 존중하고 전직 대통령도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협치(協治)의 정신, 가식 없는 인간적인 면모에 국민들은 백악관을 떠난 오바마를 그리워할 것이다.
최영해 국제부장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