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19>대형차량 폭주를 막자 끊이지 않는 음주가무 전세버스
《 대형 버스 안전은 운전사만의 책임이 아니다. 운전사가 교통법규를 잘 지켜도 안전을 위협하는 승객들의 불법 행위가 사라지지 않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운수업체나 승객 앞에서 버스 운전사는 ‘을(乙)’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라거나 술판을 벌이며 노래 반주기를 틀어 달라는 승객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다. 혹시나 불만 신고가 접수되면 다음 배차 때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뒤늦게 순찰차를 발견한 버스는 그제야 실내등을 켜고 갓길에 멈췄다. 단속 경찰관과 함께 버스에 오르자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급히 내부를 정리한 흔적이 역력했지만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는 먹다 남은 막걸리 병과 맥주 캔 수십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춤을 추다 술을 쏟았는지 복도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경북 지역을 관할하는 고속도로순찰대 3지구대가 10월 한 달간 적발한 음주가무 전세버스는 무려 209대. 올해 적발된 차량 529대의 39.5%에 이른다. 단풍놀이나 결혼식 등 전세버스 운행이 급증하는 계절에 맞춰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다.
10, 11월은 전세버스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최근 5년간 전세버스 사고 사망자 199명 중 25.1%가 10월(31명)과 11월(19명)에 발생했다. 이응필 경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 5∼8시에 음주가무로 적발되는 차량이 가장 많다”라고 말했다.
단속을 강화하자 버스 운전사들의 꼼수도 늘었다. 이날 기자가 동승한 암행 순찰차에 적발된 버스 2대는 모두 짙은 틴팅과 커튼으로 내부를 꼼꼼하게 가렸다. 고영균 경위는 “최근엔 단속을 피하려고 음량을 최대한 줄이고 달리는 버스가 많다”라고 말했다. 주행 중에는 엔진이나 바람소리 때문에 노래 반주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경찰은 주로 차량을 세워 놓고 암행 단속을 한다. 경찰 무전 감지 장치를 설치한 버스도 있어 무전기보다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버스 내 음주가무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운전사와 경찰은 “운전사에게만 벌금과 벌점이 부과될 뿐 승객들은 단속돼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적발된 운전사 박모 씨(43)는 “초등학교 동창회나 마을 계모임 승객들은 계약할 때 노래 반주기가 있는지부터 물어본다”라며 “적발되면 40일 동안 운행을 못 할 수도 있지만 먹고살려면 승객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하승우 교통안전공단 교수는 “노래 반주기가 갈수록 소형화돼 형식적인 단속으로는 적발이 쉽지 않다”라며 “관광지 부근 차고지에서 반주기를 불법 설치해 주는 업자들을 함께 단속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구미=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