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난 원인을 찾아라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서나 경찰서에서 그 원인을 조사합니다. 화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또 누구 잘못으로 불이 났는지 밝혀 손해의 책임을 가리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타다 남은 전선이 있는지, 연료 가스관이 절단되거나 코크가 열려서 가스가 누출된 흔적이 있는지, 성냥이나 전기 회로의 사용 흔적 또는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방화한 흔적이 있는지 등 과학적 근거를 통해 화재 원인을 밝힙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재가 시작된 곳을 찾는 것인데 이곳이 화재의 모든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액의 보험금을 타려고 일부러 불을 내고 우연한 사고에 의해 불이 난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불씨가 없는 곳에서 방화를 하게 되므로 불에 타기 쉬운 휘발유와 같은 물질을 여러 곳에 뿌리고 불을 지르기 때문에 인화성 물질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은 범인이 현장에 있었고, 현장에 확실한 목격자가 있어서 원인이 곧 밝혀졌지만 대부분의 방화 사건은 범인이 사라지고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화재 현장의 잔해로부터 그 원인이나 증거를 추적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있습니다. 방화 사건이 발생하면 최초로 불이 일어난 곳으로 추측되는 지점의 물체에서 석유 냄새가 나는지 조사하고, 그 부위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가스크로마토그래피로 검사해 화재 원인 물질을 확인하면서 방화를 증명하게 됩니다. 화재 사건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정말 어려워 먼지와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불에 타고 남은 재와 며칠씩 씨름하며 어디에서 불이 시작돼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찾는다고 합니다.
○ 숭례문 방화범을 찾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화재 직전 무인경비 시스템에서 외부인의 침입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렸다는 사실을 파악한 다음 화재 당시 상황이 찍힌 주변 건물 등의 폐쇄회로(CC)TV를 확보했습니다. 결국 데이터베이스(DB) 검색을 통해 범인의 외모와 특징에 따라 화재 발생 23시간 만에 방화 용의자를 체포했습니다. 범인이 숭례문 서쪽 비탈로 올라가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를 이용해 건물 안으로 침입한 다음 2층 누각으로 올라가 페트병에 담아 온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여 1, 2층을 전소시켰다는 것을 화재팀 조사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 살인 사건인가, 화재로 사망했는가?
사람을 죽이고 화재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하려고 불을 질렀다면 살인 사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부검을 통해 콧속, 기도, 폐에 그을음이 있는지 살펴보면 판명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불이 나면 기도로 연기가 들어가 콧속, 기도, 폐에서 그을음이 검출되지만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그을음이 없기 때문이죠. 또한 사망한 사람의 혈액을 채취해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 판정할 수도 있습니다. 일산화탄소는 화재가 날 때 불완전 연소가 되면서 생기기 때문에 화재가 났을 때 살아서 숨을 쉬었다면 혈액에서 일산화탄소가 검출됩니다. 사망한 다음 화재가 발생하면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혈액에서 일산화탄소가 검출되지 않겠죠.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