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실 진주 금곡정미소 대표
경남 진주에서 3대째 금곡정미소를 운영하며 토종밀인 앉은뱅이 밀을 지켜낸 백관실 씨. 금곡정미소는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다. 신원건 기자laputa@donga.com
백 씨는 기계 일을 하던 할아버지의 금곡정미소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정미소가 1916년경 세워졌으니 올해로 100년을 맞이했다. 할아버지는 가업을 이으라는 뜻에서 그가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농사를 짓게 했다. 백 씨는 당시 진주를 포함해 남부 지방에서 활발했던 앉은뱅이 밀 농사를 그렇게 시작했다.
“밀이 작아서(50∼80cm) 앉은뱅이 밀이라 불렀지예. 수입 밀하고 달리 차지고 부드럽고 고소해서 국수나 수제비 재료로 인기였지예. 글루텐 함량도 낮아서 더부룩한 느낌도 없고 속이 편하다 아닙니까.”
“앉은뱅이 밀은 우리 땅 풍토에 적합해 병충해에 강하지예. 늦가을에 파종해 추운 날씨에 자라 따로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란다 아닙니꺼. 농사짓기 쉽고 표백제·방부제 처리 안 하니 사람 몸에 더없이 좋지예.”
그는 농부들에게서 앉은뱅이 밀을 사들여 계약 재배하기 시작했다. 수입 밀보다 비싸 본전조차 건지지 못하는 해가 허다했다. 백 씨는 양봉과 축산, 과수 농사 등을 가리지 않고 병행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 밀 살리기 운동’으로도 역풍을 맞았다. 개량종인 금강밀과 조경밀이 확산됐는데, 경질 밀인 이 밀들은 맛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연질 밀인 앉은뱅이 밀도 비슷한 취급을 당했다. 백 씨는 ‘이 맛있는 밀을 왜 몰라줄까’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토종 씨앗의 대부’인 안완식 전 농촌진흥청 연구관이 2012년 백 씨를 방문해 앉은뱅이 밀을 발굴하면서 대중화 계기가 마련됐다.
“앉은뱅이 밀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흘러갔지예. 미국 농학자(노먼 볼로그)가 이 밀을 개량한 ‘소노라 64호’를 개발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밀 품종이 됐다 하데예.”
국산 밀 자급률은 1.2%(2015년 기준). 백 씨는 승산이 있다고 본다. 쌀 소비는 줄어도 밀 소비는 늘고 있고 음식에 신경 쓰는 사람도 늘고 있어서다. 앉은뱅이 밀은 호텔이나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에 납품되고 있고 100kg씩 사 가는 고객도 있다. 재배 물량(연 300t)은 직거래로 ‘완판’된다. 종자를 달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는 널리 퍼져야 한다는 뜻에서 기꺼이 씨앗을 내준다.
백 씨는 최근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로 있는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국회 농업과 행복한 미래’의 토론회에 연사로 나서 앉은뱅이 밀을 어떻게 지켜왔는지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 가서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 된 고향 친구들 보면 부러웠어예. 그런데예. 나이 들어 보니 친구들은 제가 더 유명해졌다고 부러워하데예. 제가 유식하고 배운 게 많으면 앉은뱅이 밀을 진작에 버렸겠지예. 작은 씨앗 하나라도 물려주는 일, 돈이 안 돼도 잘하렵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