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혁의 B급 살롱
2009년 데뷔했던 레인보우는 마의 7년을 넘기지 못하고 해체 수순을 밟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녀들은 내가 산 주식마냥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 레인보우는 손글씨로 쓴 해체에 대한 예쁜 글을 멤버들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하며 해체를 발표했다. 그 글을 읽어보니 나 역시 서글펐다. 그녀들의 데뷔는 나의 취업과 비슷한 시기였고, 막내 시절 레인보우의 화보를 진행하며 무척 긴장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게 레인보우는 첫 걸그룹 인터뷰였다.
하지만 가수 레인보우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에이(A)’ ‘마하’ 등의 곡이 히트하긴 했지만 소속사나 팬들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녀들이 컴백할 때마다 이번에는 차트 1위를 하리라고 기대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레인보우는 카라의 열풍을 이을 대형기획사 DSP의 야심작이었고, 팬이나 회사 모두 레인보우에 대한 기대가 컸다. 데뷔곡은 반응이 시원찮았고, 후속곡도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후 레인보우의 멤버들은 케이블 방송 MC 등을 하면서 인지도를 쌓아갔다. 평범한 행보였다. 화려한 재기를 꿈꿨지만, 끝내 1위는 하지 못했다. 반드시 차트에서 성과를 내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1위를 하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렇게 걸그룹을 제작하고 나면 유지비가 발생한다. 합숙을 위한 주거비와 식비, 운영비에 포함되는 교통비, 그리고 헤어메이크업과 의상 등에 대한 스텝 비용 등이다. 회사에서는 걸그룹을 발표하고 나서는 투입된 비용을 재빨리 거둬들여야만 한다. 대형기획사가 아닌 대출을 많이 받은 소형 기획사일 경우에는 더더욱 절박하다. 이자라도 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신인 걸그룹으로 수입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아니, 오직 행사밖에 없다. 신인 걸그룹을 보유한 회사 입장에게는 작은 행사도 소중하다. 팔도강산 그 어디라도 행사 요청이 들어오면 신인 걸그룹은 바로 출동한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신인들의 행사 출연료는 낮다.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걸그룹의 절반밖에 안 된다. 그러니 박리다매로 행사를 다닐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직원이다. 걸그룹을 운영하는 매니지먼트에는 매니저가 많지 않다. 특히 요즘은 매니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부족한 인력이 많은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당연히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사고도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가끔 걸그룹 매니저들이 묻는다. 혹시 주변에 매니저 할 사람 없냐고.
이와 같은 박리다매로는 회사의 수익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걸그룹의 인지도를 높여서 행사 비용을 더 받거나 광고료로 수익을 창출하는 게 더욱 수월하다. 그래서 출연료가 적은 방송이나 매체 출연을 반기게 된다. 더욱이 잡지사 화보는 제작비용을 잡지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달콤한 제안인 셈이다. 그렇게 만나서 화보를 찍고 인터뷰를 하면서 걸그룹 멤버들의 속내를 들을 기회가 잦았다. 그녀들은 쉬는 걸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했다고 해야겠다. 그녀들에게는 TV에 나오는 것,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실제 한 해에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걸그룹이 데뷔한다. 2015년에는 총 37개 걸그룹이 데뷔했다. 그 중 방송 데뷔를 안 한 걸그룹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늘어난다. 이 걸그룹 멤버들 중 우리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멤버는 많지 않다. 긴 연습생 과정과 치열한 경쟁을 통과하고 걸그룹으로 데뷔한 대다수 멤버는 작은 행사장에도 오르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녀들은 가수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다른 일을 선택한다는 게 쉽지 않으며, 대안이 없는 경우도 많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다시 레인보우의 해체로 돌아가자. 쑥스러운 쑥로그를 운영하는 지숙은 레인보우 활동을 하면서도 블로거로 주목받았다. 덕분에 활발한 방송활동과 음악활동도 지속할 수 있었다. 김재경과 고우리, 조현영 등 레인보우의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생존법을 선택했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걸그룹이 아니다. 7년이라는 계약기간을 버틴 그녀들에게 박수쳐주고 싶다. 그녀들은 제법 멋지게 살아남았다.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radioplay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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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면 고급문화에 심취할 줄 알았는데, 더 자극적인 대중문화만 찾게 되더라. 현재는 인터넷 문화와 B급 문화뽕까지 두루 맞은 상태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