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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손자녀-분할’… 요즘 부자들의 상속-증여 3대 키워드

입력 | 2016-11-04 03:00:00

일시적 가격 하락한 주식-펀드 “값쌀때 물려주면 회복” 인식 확산
자녀보다 손자-손녀에 나눠주고 5년 지나면 상속재산에 합산 안돼
목돈 주면 한번에 날려버릴 위험… 정기적으로 일정금액 받게 배려도




 60대 중반인 A 씨는 올해 2월 직장에 다니고 있는 30대 딸에게 주가연계증권(ELS)을 증여했다. 연초 ELS의 기초 자산인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폭락하면서 6000만 원을 넣었던 ELS의 평가금액이 5000만 원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성인 자녀에게 증여를 하면 5000만 원까지는 비과세다. A 씨는 “시장 상황이 안 좋아 일시적으로 ‘가치’가 떨어졌으나 상황이 다시 나아지면 손해는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해 딸에게 미리 증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평가금액은 다시 6000만 원을 넘어섰다.

 최근 자산가들 사이에선 A 씨처럼 일시적으로 저평가된 금융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일이 많아졌다. 금융시장 상황이 안 좋아 자산 가치가 하락했을 때 주식이나 펀드 등을 증여하면 세금 부담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 시대를 맞아 자산가들의 상속 증여 세태도 달라지고 있다.

○ 자녀보단 손자녀에게 증여

 3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의 고액 자산가 중 ‘현금 주식 펀드 등 금융자산을 물려주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2014년 77.3%에서 올해 80.4%로 올랐다. 자산가들이 일시적으로 자산 가격이 하락한 금융자산을 물려주는 방식을 선호하는 건 과거 금융시장에서 얻은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식이나 펀드 가치가 급락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회복했다는 것이다.

 최용준 세무법인 다솔 세무사는 “주식 전망이 좋지 않다면 팔아버리겠지만 일시적인 주가 조정이라고 판단되면 미리 싼값에 자녀에게 증여해 놓고 다시 주가가 오르길 기다린다”고 설명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자녀보다는 손자녀에게 바로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B 씨(77)는 최근 고등학교를 다니는 손자에게 현금 2000만 원을 물려줬다. B 씨는 “은행에서 상담을 받아 보니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난 뒤 5년이 지나면 상속세를 아낄 수 있다고 해 미리 유산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현행법에선 상속세를 계산할 때 10년 전에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까지도 포함된다. 하지만 손자녀에게 물려준 재산은 상속일 5년 이내에 준 재산만 상속 재산에 합산된다. 기대수명이 길어져 70, 80대라도 5년 안에 사망할 일은 거의 없다고 보고 ‘손자녀 상속’을 절세 방법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부자 보고서에서도 ‘재산을 손자녀에게 물려주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26.1%로 지난해(15.5%)보다 10.6%포인트 늘었다.

○ “생활비로 정기적으로 나눠 받아라”

 사망 이후 한꺼번에 목돈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방식보다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받아 쓸 수 있는 형태로 상속을 하는 경우도 예전보다 늘었다. 상속 방법을 고민하던 C 씨(72)는 지난달 한 은행을 찾아 증여 신탁에 가입했다. 이 상품은 C 씨가 사망하면 원리금을 일정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나눠 자녀에게 지급한다. C 씨가 증여 신탁을 선택한 이유는 자녀의 계속된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한 번에 목돈을 주면 또다시 사업을 한다며 날려버릴 것이 우려돼 고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해 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녀가 수중에 많은 재산을 갖게 되면 버릇이 나빠지거나 돈을 헤프게 쓸 것을 우려하는 고액 자산가가 많다”며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상속 증여를 대비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를 잡기 위한 시중은행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 도곡, 명동에 위치한 스타PB센터 3곳에 ‘KB 부동산&상속·증여센터’를 열었다. 이 센터에선 세무, 법률, 부동산 등 분야별 전문가 7명이 전담팀을 구성해 금융 자산을 30억 원 이상 갖고 있는 고액 자산가에게 가족 단위의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서 KEB하나은행은 2011년 상속증여센터를 열었다.

박희창 ramblas@donga.com·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