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산업부 차장
뜨거운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작은 보폭으로 최대한 느리게 건너야 하니 왕자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사히 끝내는 데 성공했다. 두 왕자가 찾아낸 지혜는 낙타를 서로 바꿔 타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소유한 낙타를 결승선에 더 빨리 집어넣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달렸겠는가.
창의적인 얘기들을 모아놓은 책에서 오래전 읽은 이 내용이 생각난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이동통신 ‘20% 요금할인제’의 짜임새 때문이다. 현 정책은 이동통신사가 요금할인제 홍보를 느리고 작게, 불성실하게 수행할수록 이득을 얻는 모순된 구조로 돼 있다. 낙타를 천천히 몰아야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두 해 전 이맘때 이른바 ‘단말기유통법’이 도입되면서 그 기초가 마련됐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요금할인제 가입이 가능한 약 1255만 명 중 86%나 되는 1078만 명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혜택을 받는 가입자는 약 177만 명에 불과하다. 이동통신 전체 가입자 약 5405만 명 기준으로 보면 3.3%에 불과하다.
혜택을 못 받는 사람 수도 놀랍지만 이통사가 거저먹는 수입 규모는 더 놀랍다. 국회 고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이통 3사가 요금할인제 미가입자들에게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월 최대 745억 원으로 추산된다. 1년이면 8940억 원으로 지난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영업이익(총 3조6332억 원)의 4분의 1이나 된다. 12개월 중 3개월 수입이 그냥 굴러들어오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통사는 요금할인제를 성실히 안내할 이유가 없다. 이통사들이 안내 문자를 한 차례 발송했다고 하지만 실제 발송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고, 발송됐다는 안내 문자도 ‘할인’이라는 용어가 빠져 있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정부나 국회의 추가 대책은 기존의 모순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부는 이통사들에 더 열심히 안내토록 하겠다고 했고, 의원 발의 법안은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매기겠다는 정도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