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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이동통신 20% 요금할인 ‘자동화’

입력 | 2016-11-07 03:00:00


허진석 산업부 차장

 중동의 한 부유한 왕은 자신의 두 왕자가 현명하기를 바라면서 상속 조건을 다음과 같이 내걸었다. ‘광활한 사막을 왕자들이 낙타를 타고 건너는데, 더 늦게 도착하는 낙타의 주인에게 왕가의 재산을 물려주겠다.’

 뜨거운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작은 보폭으로 최대한 느리게 건너야 하니 왕자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사히 끝내는 데 성공했다. 두 왕자가 찾아낸 지혜는 낙타를 서로 바꿔 타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소유한 낙타를 결승선에 더 빨리 집어넣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달렸겠는가.

 창의적인 얘기들을 모아놓은 책에서 오래전 읽은 이 내용이 생각난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이동통신 ‘20% 요금할인제’의 짜임새 때문이다. 현 정책은 이동통신사가 요금할인제 홍보를 느리고 작게, 불성실하게 수행할수록 이득을 얻는 모순된 구조로 돼 있다. 낙타를 천천히 몰아야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요금할인제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고 2년이 경과했거나 처음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게도 보조금과 비슷한 혜택을 주기 위해 마련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다.

 두 해 전 이맘때 이른바 ‘단말기유통법’이 도입되면서 그 기초가 마련됐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요금할인제 가입이 가능한 약 1255만 명 중 86%나 되는 1078만 명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혜택을 받는 가입자는 약 177만 명에 불과하다. 이동통신 전체 가입자 약 5405만 명 기준으로 보면 3.3%에 불과하다.

 혜택을 못 받는 사람 수도 놀랍지만 이통사가 거저먹는 수입 규모는 더 놀랍다. 국회 고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이통 3사가 요금할인제 미가입자들에게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월 최대 745억 원으로 추산된다. 1년이면 8940억 원으로 지난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영업이익(총 3조6332억 원)의 4분의 1이나 된다. 12개월 중 3개월 수입이 그냥 굴러들어오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통사는 요금할인제를 성실히 안내할 이유가 없다. 이통사들이 안내 문자를 한 차례 발송했다고 하지만 실제 발송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고, 발송됐다는 안내 문자도 ‘할인’이라는 용어가 빠져 있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정부나 국회의 추가 대책은 기존의 모순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부는 이통사들에 더 열심히 안내토록 하겠다고 했고, 의원 발의 법안은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매기겠다는 정도다.

 더 나은 대안이 있다. 가입 2년이 경과하는 등 요금할인제 대상이 되면 자동으로 가입시키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사라진다는 명분으로 정책 당국이 자동 가입에 소극적이라고 하는데 따져보면 소비자가 손해를 볼 일은 거의 없다. 요금할인제에 가입했다가 1∼2년의 약정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기기 변경이나 번호 이동을 하더라도 할인받았던 금액보다 적은 금액만 반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너지(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정책의 한 방편인 ‘자동 가입’이 힘을 발휘할 분야다. 이렇게 틀을 바꾸는 것이 소비자 권익을 지키고, 가계 통신비 부담 경감이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하는 지름길 아닐까. 정보에 취약한 약자들이 더 낸 쌈짓돈을 강자인 이통사가 거저먹는 정책은 정의에도 위배된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