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정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야권 원로가 야당에게]임채정 前국회의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야당이 양보할 계기가 만들어 진다”고 강조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6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운영에 있어 필수적인 기능마저 내팽개쳐선 안 된다. 예산 처리는 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임 전 의장은 “정국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최소한의 전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라며 “박 대통령은 이미 정치적으로 탄핵을 당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사과를 했는데….
―박 대통령이 끝까지 2선 후퇴를 결심하지 않는다면….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야당도 국민과 청와대 사이에서 조정자 태도를 견지하기 힘들게 된다. 야당도 막다른 길에 몰릴 수 있다. 촛불집회의 민심을 볼 때 박 대통령은 법적 탄핵은 아니더라도 이미 정치적으로 탄핵 상태다. 절제된 분위기 속에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지만 국민은 마음속의 폭발을 애써 참고 있는 것이다. 이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시간이 가면 해결되겠지, 울먹이며 사과하면 되겠지’ 생각해선 안 된다.”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등 야당도 법적 절차는 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사청문회 거부도 야당이 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다. 박 대통령이 ‘함께하자’ ‘권한을 나누자’고 말했지만 보여주는 행태는 일방적이다. 총리 지명 과정에서 야당의 의견을 수용하는 건 고사하고, 파트너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최순실 사태의 주된 책임은 박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책임자가 양보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를 하겠다’고 밝힌 뒤 ‘여야가 허심탄회하게 만나자’고 하면 야당은 응할 거다. 응해야만 한다. 대통령이 야당도 움직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도 안 움직인다면 그때는 야당이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하고, 영수회담도 거부한다면 국정 혼란을 방치한다는 비판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야당으로서는 현 사태를 정치적 셈법으로 볼 것이냐, 국가적인 차원으로 볼 것이냐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 대통령과 여당이 난장판으로 만들고, 책임은 야당과 같이 지자고 하니까 야당이 섣불리 움직이기 힘든 것이다. 대통령은 자기희생을 전제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위기 상황인 만큼 여야 정치권이 힘을 합쳐 대안을 내놓으라는 목소리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등 야권 대선주자들조차 각각 해법이 다르다.
“대선주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결론을 도출한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 이들 주장의 공통분모이자 최저수준인 2선 후퇴를 받아들이고 여야에 대화를 제안하지 않는 한 야당 내에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사실상 야당이 국정 운영의 중심인데, 해법을 내놔야 하지 않을까.
“야당도 속으로는 하야, 탄핵 외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헌정 중단 없이 끌고 나가려는 자세는 평가를 해줘야 한다. 야당이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가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면 안 된다. 몰고 가지 않을 방법이 있으면 그런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민주당이 12일로 예정된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하는 게 옳다고 보나.
“촛불집회는 의원들도 시민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당이 사태를 급진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일부 시민들과 정치인의 하야, 탄핵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보니 성급하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야와 탄핵이 국가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다. 뜻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야권도 조심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박 대통령이 2선 후퇴 한다면 정치권이 국정에 대한 대비가 돼 있다고 보나.
“대통령의 정통성은 부정당했다. 새로운 업무를 추진할 동력이 없다. 여야가 같이 거국내각을 만들어 함께 책임지고 나가야 한다.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로 남고, 통치 권한은 이양해야 한다. 비상내각의 형식은 다음 문제다. 거국내각이 1년여 남은 기간 정부를 이끌고 대선을 준비하고 위기를 헤쳐 갈 수밖에 없다.”
:: 임채정 전 국회의장(75) ::
△고려대 법학과, 고려대 노동대학원 석사 △14∼17대 국회의원 △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17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열린우리당 의장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