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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총구에 맞선 17세 소녀를 아시나요”

입력 | 2016-11-07 03:00:00

도쿄서 한국 여성독립투사 시화전… 日자원봉사자들, 역사의 진실 설명




2일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 직원들이 시화전을 찾은 관람객(왼쪽)에게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가 자원봉사자인 오기하라 미도리 씨이며 오른쪽은 하라다 교코 박물관 이사장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한국에서 3월 1일이 국경일이란 것을 아는 일본인은 많지 않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총구 앞에 선 17세 여학생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 건 우리 할아버지나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전시회 취지문에서)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시화전이 2일부터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다. ‘침략에 저항한 불굴의 조선 여성들’이란 제목의 이 시화전은 내년 1월 29일까지 계속된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15세 여학생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른 김귀남, 14세 때 독립운동 지도자라는 이유로 체포돼 감옥에 갇힌 김나열 등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30명의 생애가 시화로 소개됐다. 시인으로도 활동하는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이 시를 썼고, 이무성 한국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전시 공간인 고려박물관(www.40net.jp/∼kourai/)은 도쿄의 코리아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에 자리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한류 덕에 번성했다가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로 얼어붙은 코리아타운에는 아직도 썰렁한 바람이 분다. 40평 남짓한 박물관 안에서는 60, 70대 여성 자원봉사자 10여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관람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리포트를 쓰기 위해 박물관을 찾은 중학생 2명이 한일 교류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자, 하라다 교코(原田京子·75) 이사장이 책을 펴 놓고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은퇴 전에 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오랜 기간 재직했다. 하라다 이사장은 기자에게 “일본 학교에선 조선 침략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라며 “이렇게라도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친이 조선의 수풍댐 건설에 깊이 관여한 관료였다는 걸 뒤늦게 알고 한국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2001년 정년퇴직 뒤 한국의 장애인 보육원에서 2년간 숙식하며 봉사 활동을 했다.

 “항일 독립운동은 우리 일본인의 조부모, 부모가 관여한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고 알려지지도 않은 게 많아 놀라울 따름입니다.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죠.”

 고려박물관은 외부의 도움 없이 시민의 힘만으로 운영된다. 1990년 한 재일동포 여성이 ‘한일 교류사의 박물관을 만들자’는 신문 투고를 한 것을 계기로 10여 년간의 모금운동 끝에 2001년 문을 열었다. 자원봉사자 100여 명의 헌신적인 활동과 연회비 5000엔을 내는 회원 750여 명의 지원으로 근근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회원들의 고령화와 재정 압박으로 명맥 유지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입장료(400엔)를 내는 관람객이 하루 10명을 넘어야 겨우 적자를 면하는데 그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번에 처음 전시회 준비에 참가했다는 도다 미쓰코(戶田光子·68) 씨는 2년 전 거리에 만연하는 헤이트 스피치를 보고 안 되겠다 싶어 동참을 결정했다.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등 해외에서도 활동했다는 걸 처음 알았다”라며 “여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라고 말했다. 전직 주택 수리 업자인 오기하라 미도리(荻原みどり·68) 씨는 전공을 살려 못을 박고 설치하는 등의 일을 도맡고 있다. 그는 “조선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극에 푹 빠져 있다”라며 “일본인들이 양국 역사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점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