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미국 대통령과 충직한 국무장관의 이야기를 다룬 CBS 드라마 ‘마담 세크러터리’ 포스터. 출처 CBS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넷플릭스의 신작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는 갑자기 미 대통령이 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의 이야기다. 그는 국회의사당 테러로 대통령과 주요 정부 인사가 즉사하자 얼결에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듣보잡 장관인 자신을 통치권자로 인정하지 않는 참모와 각료들을 이끌고 전대미문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노회하고 부패한 힐러리 클린턴과 ‘인간말종’ 도널드 트럼프가 맞붙은 2016년 미국 대선이 8일 치러진다. 둘 중 한 명이 백악관 주인이 되는 미국의 현실은 최순실 게이트로 휘청거리는 한국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다. 하지만 최근 미국 드라마 속 대통령들은 드라마임을 감안해도 그야말로 격이 다른 리더십과 품격을 보여 준다.
자다가 백악관에 끌려와 후드 티 차림으로 취임 선서를 한 커크먼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연히 말단 참모에 불과한 연설문 작성 비서관이 자신을 험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젊은 비서관을 나무라는 대신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내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기를 바라나?”
“네. 미국을 위해서요.”
커크먼은 그를 해고하는 대신 대변인으로 승진시킨다.
드라마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답답할 뿐이다. 아직 책임 인정과 소통에 미흡한 대통령, 한때 그 그늘에서 호가호위했던 이들이 사태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며 자신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뺨에 점 하나를 찍은 구은재가 민소희로 변하는 한국 막장 드라마가 극사실주의 작품처럼 보인다. 심란한 마음을 남의 나라 드라마 속 대통령으로 달래야만 하는 상황이 씁쓸하고 헛헛하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