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오늘날 널리 쓰이는 ‘북웜(bookworm)’은 실제로 책이나 종이에 서식하는 작은 벌레를 뜻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먼지다듬이벌레가 있다. 따뜻하고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벌레로, 사람에게 특별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다만 알레르기나 아토피 환자를 괴롭히는 수는 있다. 책벌레보다는 곰팡이가 책을 훼손하는 주범이며, 책벌레는 곰팡이를 먹고 산다.(‘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조선 시대에는 사고(史庫)에 보관된 전적을 정기적으로 바람에 쏘이고 햇볕에 말렸다. 이를 포쇄(曝쇄)라 하는데, 숙종 때 문신 신정하(1680∼1715)는 1709년 포쇄관으로 태백산 사고를 찾은 경험을 시로 남겼다. ‘두 번 절하고 자물쇠 열어 포쇄를 하니, 상자가 서른여섯 개라. 해가 중천에 이르러 마침 부는 바람에 책장을 펼치니, 날아 지나가는 새가 책에 그림자를 떨구는구나.’
1년에 단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인 독서율은 2013년 71.4%에서 2015년 65.3%로 급감하여, 1994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 시작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성인 월평균 독서량도 2009년 0.9권에서 꾸준히 떨어져 2015년에는 0.76권이었다. 1999년 5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공익광고가 이미 책벌레 멸종을 경고했다.
“우리나라에는 책벌레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 월평균 독서량 0.8권.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는 어느새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책은 시간 날 때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는 것! 다시 책벌레로 돌아갑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