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9>동대구시장 청춘정미소
동대구시장 ‘청춘정미소’의 공동대표 김병욱 씨(왼쪽)와 권순록 씨가 쌀 포대를 어깨에 둘러메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서구화되는 식문화로 문을 닫는 정미소가 늘고, 쌀 소비가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 정미소에 도전했다”며 “작은 점포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이곳에서 ‘사업’의 꿈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손가인 기자 gain@dong.com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독특한 느낌이 나는 청춘장 골목은 올해 5월 처음으로 문을 연 테마 거리다. 대형마트가 하나둘 들어서고 시설이 노후하면서 동대구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자 북구는 지난해 6월 중소기업청에서 주관한 ‘전통시장·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 공모’에 참여했다. 시장 안 빈 점포를 활용해 총 252.27m² 규모로 12개의 가게를 만들어 청년 창업자들을 모았다.
○ 시행착오 끝에 문을 연 청춘정미소
김 대표의 아버지는 경북 포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어릴 때부터 봐 왔던 농사일과 농산물 유통 과정에 많은 영향을 받아 3년 전에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생애 첫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데 대한 부담감이 컸다. 김 대표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어린 나이에 놀랄 정도로 크게 성공을 해서 감당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층 더 단단해진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다시 한 번 도전했다. 창업동아리에서 알게 된 김동영 씨와, 그의 지인 권순록 씨와 함께 각지의 농산물을 모아 파는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장사’가 아닌 ‘사업’을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올해 1월 중소기업청의 청년상인 창업지원 공모에 지원했고 올해 5월 동대구시장 청춘장에 ‘청춘정미소’를 차렸다.
○ 청년들이 운영하는 쌀집
서구화되는 식문화로 문을 닫는 정미소가 늘고 있다. 이런 사회 변화가 청춘정미소를 탄생하게 했다. 김 대표는 “쌀 소비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 젊은 사람들은 잘 도전하지 않는 정미소를 세웠다”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정미소라는 희소성과 젊은 아이디어에서 나온 차별성은 청춘정미소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특히 20kg의 쌀을 한 번에 팔지 않고 시장을 방문할 때마다 2, 3, 5kg씩 원하는 양만큼 즉석에서 도정해 파는 회원제도 인기다. 김 대표는 태블릿PC에 정리해 둔 회원 목록을 보여줬다. 언제 손님이 방문했고 몇 번, 어떤 종류의 곡식을 사 갔는지 정리해 둔 목록이었다. 그는 “보통 쌀을 10, 20kg씩 대량으로 구매해 집 안에서 오랫동안 보관하는데 쌀벌레도 생기고 쌀 본연의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런 이유로 청춘정미소의 회원으로 가입해 쌀을 재구매하는 손님이 벌써 1000명에 가깝다”고 말했다.
○ 먼 미래의 더 큰 가치를 위해
이런 노력으로 동대구시장에 문을 연 지 반년이 된 청춘정미소는 지역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쌀집으로 자리 잡았다. 청춘정미소는 일주일에 20kg짜리 쌀 80포대 정도를 팔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함께 뜻을 모아 청춘정미소를 연 세 사람의 협동심이 큰 역할을 했다. 김 대표는 “창업을 할 때에는 함께 힘을 모으는 사람들끼리 얼마나 잘 맞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며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단 한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는 팀”이라고 말했다.
세 대표는 청춘정미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금은 10여 가지 품종의 쌀을 심어두고 수확을 앞두고 있다. 소비자의 입맛에 딱 맞는 밥맛을 찾기 위해서다. 또 청춘정미소를 자주 찾아 주었던 소비자 중 20∼30명을 평가단으로 위촉해 정미소 쌀과 잡곡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도록 평가단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청춘정미소의 세 대표는 아직 대학생이다. 학업을 병행하면서 사업도 발전시켜 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몸이 고단하더라도 동대구시장 한쪽에 마련한 청춘정미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대구=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