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그 소설을 한국에 오기 전에 읽었으면 그 ‘열’이 뭔지, 사우나 안에서 땀을 흘리는 게 무슨 일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유럽인인데도 사우나를 처음 체험한 곳이 한국이었다. 북유럽, 동유럽과 달리 서유럽에는 사우나 문화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공중 목욕 문화도 없고. 물론 찾아보면 사우나 있는 헬스클럽 혹은 함맘(터키식 목욕탕)이 있고 탈라소 테라피(해수 요법) 같은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럭셔리 리조트도 있는데 전혀 주류가 아니다.
영어로 ‘spa’란 말은 14세기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벨기에 도시 스파(Spa)의 이름을 따서 생긴 단어이지만 나는 거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부모 형제와 함께 목욕하러 간 적도 없다. 수영장에는 가족끼리 놀러 가곤 했다. 벨기에 도시에는 동네 수영장이 많은 편이고 보통 어린 나이부터 다니니 상당히 낯익은 장소다. 그렇지만 수영장은 물놀이나 운동하는 시설이지, 씻는 곳이 아니다.
따뜻한 추억이 많이 생겼다. 내 친구 요한이랑 어린이날에 관악산에서 내려왔다가, 정환 형이랑 문경새재에서, 벨기에 친구 3명과 함께 월악산 등산하고 수안보의 어느 온천호텔에서, 한국어학당 친구 야스타카랑 어느 날 수업 끝나고 용산 드래곤힐스파 온탕에서 수다 떨고 나온 다음 맛있게 감자탕 먹은 장면도 뚜렷이 떠오른다.
혼자 자전거 여행하다가 아산 온천에 들른 것도 매우 맑은 추억이었고. 해운대 달맞이고개 베스타스파 옥상에서 내려다본 근사한 풍경도 잊을 수 없다. 몇 년 전 1월 1일에는 새해맞이 행사 대신 서울 아차산을 둘러본 다음에 불가마를 찾았다. 요즘에는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이용하기도 한다. 작년 12월 31일 저녁에는 찜질방에서 내 프랑스 친구 니콜라를 우연히 만나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면서 즐거움을 나누었다. 그 외에도 친구와 찜질방 내 회의실에서 같이 일한 장면까지 떠오른다. 생각할수록 계속 떠오를 것 같은 이 따뜻한 추억들이 왜 이렇게 기분 좋을까.
수년간 내게 찜질방은 스트레스를 풀고 자연스럽게 편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되었다. 겨울을 기대할 만한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그 환경이 낯선 고향 친구에게는 맥반석의 매력이나 수면실의 우아함을 잘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한국에 찾아오는 유럽 친구를 계속 ‘개종’시켜 보겠다. 찜질방 문화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추세에도 저항해 봐야겠다. 그 장소는 분명 한국 사회의 중요한 단면인 것 같다.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