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정치부 차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요구는 정당마다 다르다. 하지만 하야(下野)를 주장하는 정의당을 제외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국회 추천 총리 후보자 지명, 이 총리에게 국정운영 전권 부여 이후 2선 후퇴라는 방향에서 다르지 않다. 이른바 거국중립내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외국에 대한 국가상징으로서의 역할만 맡기고, 거국내각이 다음 대선까지 1년 4개월이나 국정을 운영한다는 점은 곤혹스럽다.
두 야당은 박 대통령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권 퇴진 방법은 현 시점에서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박 대통령의 결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탄핵이다. 야3당과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을 합치면 171명이다. 발의가 가능하다.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새누리당 의원 중 적어도 29명이 박 대통령에게 ‘반란표’를 던져야 한다. 다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기란 쉽지 않다. 민심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고는 해도 알게 모르게 ‘배신의 정치인’이란 낙인이 그들에게 찍힐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본다. 박 대통령 주도의 개헌은 무망하다. 국회가 개헌특위를 통해 핵심인 통치구조에 합의한다면 이후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그것이 대통령 4년 중임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상관없다.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하면 20일의 공고와 60일 이내의 국회 의결, 30일 이내의 국민투표를 거쳐 이르면 내년 3월 안에도 개헌이 가능하다.
개헌이 되면 부칙에서 박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정할 수 있다. 대통령제라면 대선 시기를 앞당기면 되고,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라면 역시 대선을 앞당겨 차기 대통령 임기를 다음 총선인 2020년 4월까지로 맞추면 된다. 박 대통령은 불명예스러운 하야가 아닌 헌법에 따른 퇴임을 맞게 된다. 불안한 거국내각의 부담은 덜어진다. 국민의 뜻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