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혁의 B급 살롱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올해 영화계의 키워드들을 꼽자면 ‘샤머니즘’ ‘마법’이다. 상반기에는 토속적인 색깔로 샤머니즘을 빚어낸 ‘곡성’이 있었고, 가을에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휘황찬란한 마법사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영화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CG), 선과 악의 극명한 대립, 그리고 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올해 등장한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자본과 결탁한 세력은 등장하지 않는다.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진 인물도 없다. 단지 영원한 삶에 대한 갈증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공포영화 ‘쏘우’를 통해 가치관과 신념의 복제를 통해 영원한 존재가 되는 ‘직쏘’를 목격한 바 있다. 시대가 변하고, 과학기술이 진보된 사회에도 과거의 가치관(더 적절한 단어로는 ‘혼’)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체감했다. 그리고 이 낡은 유령은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 오늘날의 소중한 가치들을 해치우며, 혹은 잡아먹으며 영생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때마침 매우 우연히도 지구 반대편 할리우드에서는 영생을 추구하는 집단들을 악으로 그려낸 마법사들의 영화를 만들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다. 이 두 영화가 어떻게 영생을 추구하는 악당들을 물리치는지 살펴보자.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할리우드 판 무협영화를 신비롭게 하는 것은 닥터 스트레인지 캐릭터를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미국식 유머와 본 적 없는 화려한 CG, 그리고 루프라는 시간 개념이다. 다른 마블 영화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택한 것은 마법의 시각적인 효과다. ‘인셉션’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미러디멘션’ 효과나 시간을 역행하는 총천연색 만화경으로 표현한 CG의 압도적인 효과는 마법을 소재로 한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만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 어둠의 마법사를 물리치기 위해 닥터가 선택한 것은 시간의 반복, 즉 루프다. 악당을 지겹게 만들어서 쫓아내는 것.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지독하게 저항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영원한 생의 그림자는 지겨운 나날들의 반복일수도 있다.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조금 더 우아한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은 영생에 어떻게 대항할까?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마법사 없는 마법의 세계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만 살고 있는 보육원은 1943년 9월 3일에 갇혔다.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 더 정확히 말하자면 루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임브라인’ 미스 페레그린이 보육원장이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으로부터 24시간을 루프로 설정했다. 그리고 매일을 반복하며 사는데, 이곳에 가려면 특별한 출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주인공 제이크가 이곳에 발을 딛으면서 이상한 아이들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마치 엑스맨 유치부원들이 자비에르 영재학교를 다니고,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에 처음 입학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하지만 팀버튼은 특유의 미쟝센으로 이러한 이미지들을 덮어버린다.
영화의 악당은 할로우 게스트와 그들의 수장 바론(새뮤얼 L. 잭슨)이다. 영생하기 위해 시간을 조정하는 능력을 가진 임브라인을 잡아다 실험이자 고문을 했지만, 부작용으로 의식 없는 괴물인 할로우 게스트가 됐다. 할로우 게스트는 이상한 아이들의 눈을 먹어야 사람이 되어 영생할 수 있기에 아이들과 미스 페레그린을 잡으러 다닌다. 즉 보호자인 리더를 없애고, 구성원들의 앞을 못 보게 만들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눈에는 할로우 게스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한 대상이 우리는 시선을 빼앗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한다는 이야기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에디터
*사춘기 이전부터 대중문화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면 고급문화에 심취할 줄 알았는데, 더 자극적인 대중문화만 찾게 되더라. 현재는 인터넷 문화와 B급 문화뽕까지 두루 맞은 상태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