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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골퍼 홍진주-안시현 “살기 위해 최선… 실패라 여긴 것도 돌아보니 보약”

입력 | 2016-11-09 03:00:00

‘10여년만에 부활 우승샷’ 엄마골퍼 홍진주-안시현




10년 넘는 무관의 세월 끝에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엄마 골퍼’ 홍진주(첫번째 사진 왼쪽)와 안시현이 8일 경기 이천 사우스스프링스CC에서 육아, 골프 등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DB

 “날이 갑자기 추워져 아이 감기 걸릴까 걱정이에요.”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래. 호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 얘기를 화제 삼아 웃고 떠드는 모습이 영락없는 가정주부의 모습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둘뿐인 엄마 골퍼 홍진주(33·대방건설)와 안시현(32·골든블루).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유망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잠시, 20대 대부분을 상처와 시련의 시간으로 보냈던 두 선수는 올해 오랜 기다림 끝에 정상의 기쁨을 누리며 눈물을 쏟았다. 투어 최고령 선수인 홍진주는 6일 팬텀클래식에서 10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이보다 앞서 안시현은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12년 무관을 끊었다. 둘은 우승 보너스로 2년 출전권까지 확보해 한층 여유 있게 투어 생활을 하게 됐다.

우승 뒤 아들과 함께 한 홍진주(위쪽 사진), 딸을 안고 웃고 있는 안시현. ADT캡스 챔피언십·KLPGA 제공

 8일 시즌 최종전인 ADT캡스 챔피언십 프로암대회가 열린 경기 이천의 사우스스프링스CC에서 만난 안시현은 홍진주에게 “언니 너무 멋졌어”라며 축하 인사부터 건넸다. 홍진주는 “시현이가 오랜만에 우승하는 걸 보고 부럽기도 하고 자극을 받은 덕분이다”라고 반겼다. 두 선수는 “20대 초반 첫 승을 했을 때는 엄마를 껴안고 울었는데 올해 다시 우승하고는 내 아이를 안고 웃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중고교 시절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선후배인 두 선수는 국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꿈에 그리던 미국 ‘빅리그’에 진출했지만 성적 부진에 허덕이다 국내로 돌아온 것도 똑같다. 안시현은 유명 연예인과의 결혼과 은퇴, 출산과 이혼의 시련을 겪었다. 홍진주 역시 결혼과 출산 후 일본투어까지 기웃거렸다. 신데렐라라는 별명은 어느새 너무 오래 쉬었다며 ‘쉰데렐라’로 변했다.

 어쩌면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과거일 텐데 이젠 담담하게 지난날을 돌아봤다. 안시현은 “골프가 너무 싫어 나를 내려놓으려고 결혼했는데 이혼에 이르렀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는 절박함이 나를 다시 필드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홍진주는 “골프가 안 풀리다 보니 더 집착했는데 그럴수록 수렁은 깊어졌다. 나 자신을 몰아세우다 임신을 하게 돼 휴식기를 가졌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의 애환에서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홍진주는 세 살배기 아들을 입주 도우미에게 맡기고 ‘직장’에 나간다. 안시현은 친정어머니가 외손녀를 돌본다.

 “지방 대회에 가느라 애가 아파도 못 돌볼 때 가장 가슴이 아파요. 아이에게 동네 어른들 보면 꼭 인사를 하라고 시켜요. 예의가 우선이죠. 유아용 골프채를 사줬는데 아직 별 관심이 없네요. 남자 골프가 워낙 힘들어서 나중에 시킬지 고민돼요.”(홍진주)

 “요즘 부쩍 딸이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요. 대회도 나가지 말라고 해요. 스케줄이 없으면 딸과 책을 읽고, 찰흙놀이에 스파게티 카레도 해주며 시간을 같이 보내요.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안시현)

 홍진주와 안시현은 후배들의 귀감 같은 거창한 단어는 과분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골프가 직업이라 살기 위해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다만 포기하지 않고 슬기롭게 헤쳐 나온 것 같아요. 실패라고 여겼던 것도 먼 훗날 돌아보니 좋은 경험이었더라고요. 엄마 골퍼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
  
이천=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