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의 정체성 ‘네이버후드’를 상징하는 조형물 ‘클라우드 게이트’(애니시 커푸어 작품).
조성하 전문기자
평소 같으면 두 집회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서울 집회는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분노의 시위였고 시카고 집회는 환희의 도가니였으니. 그런데 그날은 그렇지가 않았다. 서울 집회는 분노 폭발, 법규 무시, 공권력과 충돌이라는 ‘예전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다. 한 천박한 여인에게 휘둘린 대통령, 그로 인해 초래된 파국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용암만큼 뜨거웠지만 말이다. 기자는 군중 한가운데서 그 변화를 읽었다. 시민들의 표정은 차분했고 행동은 의연했다. 믿을 수 없는 일도 벌어졌다. ‘의경들은 잘못 없잖아요! 박수 한 번 보냅시다.’
시카고는 독특한 도시다. ‘문화와 태생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화합을 이룬 도시다. 미국에선 이런 이질적 집단을 ‘네이버후드(Neighborhood·이웃)’라고 부른다. 다민족사회인 미국은 어디나 그렇지만 시카고는 뉴욕과 더불어 유독 네이버후드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2011년 조사에서는 무려 200개나 됐다. ‘더 정글’은 리투아니아계의 부두 노동자집단을, ‘필젠’은 도시 서쪽 편의 체코 이민자 사회를 말한다. 테일러 스트리트 주변에는 ‘리틀 이탈리아’가 있다. 시카고 시의 행정단위인 77개 커뮤니티도 그 기초는 이 네이버후드다.
물건은 돈이고 돈은 일자리를 만든다. 19세기 말부터 시카고에 사람이 몰린 이유다. 그게 다양한 네이버후드의 배경이기도 하고. 네이버후드 중에서도 주류는 아일랜드계의 브리지포트 네이버후드다. 이들은 일리노이 운하 건설 때 이주해 공사를 맡았던 노동자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들의 근거지는 다운타운 안 스턴트쿼리 공원(옛 채석장) 주변. 운하는 이들이 여기서 캐서 나른 돌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네이버후드는 운하보다 더 귀한 유산을 시카고에 남겼다. 43년 동안 12번이나 시장으로 선출돼 시카고의 발전을 이끈 리처드 J 데일리와 리처드 M 데일리 부자(父子)다.
아버지는 집무실에서 눈을 감았고 아들은 아버지만큼 재직했을 때 재출마를 고사했다. 부자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의 네이버후드를 화합으로 이끌었다. 네이버후드의 도시 시카고의 저력이자 오늘 우리가 시카고를 부러워하는 이유다.
한국은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분열로 가고 있다. 세대, 지역, 이념, 소득, 학력, 성별 등에 따른 갈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통합으로 가야 할 시점에서 오히려 분열로 치닫는 것은 안타깝다. 이번 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한다. 지난번에 보았던 ‘질서’를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비록 통합으로 가는 길은 험할지라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승화된 질서’를 이룬다면, 뭔가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통합이 분열되는 것을 막고, 분열을 통합으로 유도하는 것은 정반대의 힘이 작용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똑같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요즘 대한민국을 슬프게 만든 최고 리더십의 추락을 보며 시카고의 네이버후드와 그 네이버후드를 통합한 리더십을 다시 생각한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