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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창덕]최순실에 밀린 구조조정

입력 | 2016-11-09 03:00:00


김창덕 산업부 기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각 회사가 자구안을 내놓고 인력을 줄이고 있지만 지금처럼 수주가 안 되면 인원 구조조정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8일 조선업계 한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온 나라가 ‘최순실’이라는 블랙홀에 휘말리는 동안 한국경제의 가장 큰 숙제인 산업 구조조정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최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한 정치권 다툼이 끝없이 확대되면서 정부마저도 각종 현안에 손을 놓고 있다. 현직 경제부총리와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동시에 업무를 보다 보니 갈팡질팡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정부는 9월 말과 지난달 말 각각 철강·석유화학, 조선·해운에 대한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은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5대 취약업종에 대한 산업 구조조정을 공론화한 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무엇보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계획’이 아닌 ‘실행’에 있다. 미진한 계획이라도 실행에 옮겨야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모두가 정치판 싸움을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있는 사이 국가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는 중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내년 산업 경기의 키워드로 ‘빙벽’을 꼽았다. 취약 산업들의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다른 산업으로까지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쉽게 넘길 수만은 없는 경고다.

 올해 들어 조선업계 ‘빅3’에서만 5000명에 가까운 근로자들이 희망퇴직의 형태로 거리에 나왔다. 내년과 후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경우 조선업계 전체 종사자들이 일자리 위협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산업 구조조정에 고삐를 죄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한국경제는 반도체, 스마트폰, 조선, 석유화학 등 일부 주력산업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의존해 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존 주력산업들이 점차 쇠락해 가는데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스타산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의 구조조정이 산업 내 경쟁력 회복이라는 일차적 목표를 넘어 ‘한국 산업 지도’를 수정하기 위한 시작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구조조정은 ‘타이밍’이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한국경제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대자동차와 르노삼성자동차는 올해 노사협상을 하며 나란히 큰 진통을 겪었다. 노사 간 잠정합의안이 노조 찬반투표에서 현대차는 1차례, 르노삼성은 2차례 부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24차례나 파업하는 동안 르노삼성 노조는 한 차례도 파업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협상하기로 한 원칙 때문이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정 공백기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노조의 파업과 다를 게 없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 회사가 손해를 보지만 정부가 일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모두 국민이 져야 한다.
 
김창덕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