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10>서울 인현시장 ‘래빗온’
일러스트 매거진 팀 ‘래빗온’의 손이용, 김예은, 박하나, 이종환 씨(왼쪽부터)가 자신들이 만든 매거진과 일러스트를 들고 웃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예술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약 26m² 크기의 사무실은 아늑한 다락방 같은 느낌이었다. 한쪽 벽면에 회색 패브릭 소파가 있고 바닥에는 비슷한 색깔의 푹신한 러그(작은 카펫)가 깔려 있었다. 반대편의 커다란 책상에선 세 사람이 노트북으로 한창 작업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놓여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액자가 이곳이 어디인지 말해줬다. 1일 찾아간 서울 중구 인현시장 내 일러스트 매거진 ‘래빗온’의 사무실은 ‘청춘 예술가들의 아지트’ 같았다.
○ 원하는 대로 맘껏 펼치는 매거진 ‘래빗온’
‘마음껏 지껄이다, 떠들다’라는 의미의 래빗온(rabbit on)은 이들이 팀을 만든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름이다. 팀원 모두 대학을 졸업한 뒤 회사에 다니거나 프리랜서로 일러스트 작업을 해왔다.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정해진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삶이 어쩐지 공허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마름이 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대학 동기였던 손이용(31) 이종환(30) 래빗온 공동대표가 2014년 겨울 의기투합해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모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 대표는 “기존 회사에선 일한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관뒀다”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지만 최소한 창작물이 존중받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전통시장으로 들어온 청년 예술가들
그래도 시장에 작업실을 두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을까. 기자의 질문에 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손 대표는 “가끔 우리처럼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전통시장과 어울리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차갑고 딱딱한 도시적 분위기보다 부드럽고 인간미 넘치는 시장이 창작을 위한 영감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시장의 일원이 된 만큼 래빗온도 기존 상인들과 상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인현시장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만들 때 래빗온이 일러스트 작업을 맡았다. 젊은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으로 ‘드로잉 클래스’ 개설도 고민하고 있다. 이 대표는 “취미로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클래스를 열고 이들이 그린 그림을 소품으로 만들어 주는 등 다양한 방안을 구상 중”이라며 “래빗온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예술이 목표”
래빗온은 아직 수익구조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5월에 만든 매거진도 문화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인터넷으로 일반인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을 통해 모은 지원금으로 제작했다. 일러스트를 활용한 머그컵, 노트 등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 파는 것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손 대표는 “현재 팀원들이 각자 프리랜서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빨리 이런 부업을 하지 않아도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