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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미FTA는 일자리 킬러”… 높아질 美 무역장벽

입력 | 2016-11-10 03:00:00

[미국 우선주의 태풍]
비상벨 울린 한국경제




 벼랑 끝에 몰린 한국 경제를 미국발(發) 리스크가 덮쳤다. 9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수출한국’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며 그 어느 정부보다도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시행을 예고해 왔다. 가뜩이나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확실한 악재(惡材)다.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섰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경제 컨트롤타워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어 대응체계 곳곳에 구멍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높아지는 무역 장벽


 미국은 한국의 수출액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나라다.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698억3200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13.3%를 차지했다. 대미 수출에서는 TV와 무선통신기기, 자동차 등 최종 소비재 비중이 높아 미국의 무역정책에 따른 영향이 직접적으로 미친다.

 미국이 한국이 아닌 중국, 멕시코를 타깃으로 해 시행하는 무역정책도 한국 기업들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45%의 관세를 부과하고, 각국 자동차 회사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지어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멕시코산 자동차에 3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이나 멕시코로 소재·부품 등 중간재를 수출한 뒤 현지에서 조립해 미국으로 완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우선주의 강화 기조는 전 세계적인 교역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전 세계 주요국에서도 보호무역주의 양상이 짙어지고 있다”며 “이미 지난해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전 세계 교역이 반등 기회를 잃고 추가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한미 FTA 재협상·TPP 탈퇴 가능성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기존의 자유무역협정이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강력 비판해 왔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서는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킬러(살인자)”라며 전면 재협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이 충분히 크다”며 “협상 전문가인 트럼프는 한미 FTA 전면 무효화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들고 재협상에 나서 자국 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으로 관세 양허(자동차 등 특정 품목의 관세를 일정 수준 이하로 부과하기로 한 약속)가 중단되면 2017년부터 5년간 수출손실액이 최대 269억 달러에 이르고 일자리는 24만 개가 줄어들 것이라고 최근 추산했다.

 미국 의회 비준을 남겨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존폐 위기에 놓였다. 트럼프는 TPP가 ‘최악의 협정’이라며 협정을 무효화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레임덕 세션(대선 이후 새 정부의 임기 시작 전 열리는 의회)에서 TPP 비준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민주·공화 양당이 반대하는 데다 트럼프 당선인이 탈퇴를 예고한 상황이라 의회 통과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국은 TPP 조기 비준을 전제로 참여를 준비해 왔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연내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의 무역블록 소외는 더욱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후 이인호 통상차관보 주재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미국 대선 이후 차기 행정부의 통상 정책을 전망하고 주요 한미 통상 이슈를 점검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통상 관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채널까지 총동원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경제 컨트롤타워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미 스킨십을 강화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각 인사를 조속히 마무리하는 등 국내 사정을 정비해 달라진 통상 환경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신민기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