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단 한 명도 찬성하질 않았다. 두 가지 이유였다. 현재 교원평가제 같은 통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칼럼을 써봐야 팔짱만 끼는 교사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을 도입하자는 건 기자가 할 일이 아니다’란 지적도 나왔다. 아니, 제 할 일에 눈감은 교사를 감시하자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학교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교사에게 소소한 통제 장치 하나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셈이다.
‘내 맘을 왜 몰라주나’ 서운해하는 중에 구속된 정호성 씨가 청와대 비서관 시절 업무용과 개인용 휴대전화 말고도 명의자를 찾을 길 없어 범죄자나 애용하는 ‘대포폰’을 두 대나 쓰고 있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상전처럼 모시던 최순실 씨와 통화한 내용,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사항도 그의 휴대전화에 녹음돼 있었다고 한다.
사진이 없는데 어느 언론이 우 씨의 황제 조사 의혹을 제기하면 검찰은 “허위 보도다. 검찰은 언제나 엄정하다”고 우겼을 게 뻔하다. 허나 이런 명백한 사진과 협박의 말들이 쏟아지니 이들은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했다. 처음엔 속이 시원했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언론의 끈질긴 노력으로 하나둘 아주 조금씩 그들이 떨구고 간 권력 난장질의 찌꺼기가 발견됐을 뿐 얼마나 많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그 전모를 알 길 없는 탓이다. 이제 몇 가지는 확실해졌다. 청와대 사람은 누구와 밥을 먹고 통화했는지 빠짐없이 기록해둬야 한다. 이번처럼 뭔가 분명한 의혹이 제기되면 그 기록을 제출하도록 해야 밤마다 권력 도둑질 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기록하지 않거나 대포폰을 쓰거나 공용차량에 외부인을 태우고 검문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다 적발되면 곧바로 범죄 혐의자로 다뤄야 한다는 점을 온 국민이 이번에 분명하게 알게 됐다. 사생활 보호라는 허울 좋은 변명도 청와대 사람에겐 필요 없는 이유다.
운 좋게도 버려진 태블릿PC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통화 녹음이나 사진이 없었다면 근거 없이 괴롭히지 말라며 목청을 높이고 몽둥이를 들었을 그들이다. 최 씨 덕분에 청와대 같은 권력에는 감시의 빅브러더가 절실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