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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영]‘빅브러더’ 감시받을 곳은 청와대

입력 | 2016-11-10 03:00:00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이번 칼럼을 쓰기 위해 주변에 의견을 물었다. “중고교 교실에 CCTV를 설치해서 학부모가 언제든 보게 하자고 쓰려는데요, 어떤 점을 짚어야 할까요. 왜 이런 소재를 쓰냐고요? 입시 이후는 말할 것도 없고 학기 말인 요즘 분위기가 어수선한 학교가 많다잖아요. 물론 잘하는 학교도 있다지만 아이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데 도대체 교사들이 뭐하는지 감시해야 나아질 것 같아서요.”

 단 한 명도 찬성하질 않았다. 두 가지 이유였다. 현재 교원평가제 같은 통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칼럼을 써봐야 팔짱만 끼는 교사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을 도입하자는 건 기자가 할 일이 아니다’란 지적도 나왔다. 아니, 제 할 일에 눈감은 교사를 감시하자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학교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교사에게 소소한 통제 장치 하나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셈이다.

 ‘내 맘을 왜 몰라주나’ 서운해하는 중에 구속된 정호성 씨가 청와대 비서관 시절 업무용과 개인용 휴대전화 말고도 명의자를 찾을 길 없어 범죄자나 애용하는 ‘대포폰’을 두 대나 쓰고 있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상전처럼 모시던 최순실 씨와 통화한 내용,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사항도 그의 휴대전화에 녹음돼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최 씨의 음습한 거래는 태블릿PC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휘둘렀는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국민과 세상이 다 알게 됐다. 청와대 비서관은 대기업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러나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라는 취지의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CCTV에는 최 씨 몸에 먼지 묻을까 걱정한 청와대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자기 옷에 닦은 뒤 건네는 장면이 잡혀 만인의 비웃음을 사고 허탈감을 안겼다. 검찰을 주무른다는 우병우 씨가 독기 품은 표정으로 조사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혹시 수사 검사에게 훈계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검찰을 들여다볼 눈과 귀가 없는 나로선 의심을 해소할 길이 없었다. 경쟁사라서 약간 배가 아픈 건 사실이었지만 조선일보가 끈질기게 감시의 카메라를 들이대 팔짱끼며 웃고 있는 우 씨의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역시, 그들은 여전히 권력을 즐기며 세상을 깔보고 있었다.

 사진이 없는데 어느 언론이 우 씨의 황제 조사 의혹을 제기하면 검찰은 “허위 보도다. 검찰은 언제나 엄정하다”고 우겼을 게 뻔하다. 허나 이런 명백한 사진과 협박의 말들이 쏟아지니 이들은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했다. 처음엔 속이 시원했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언론의 끈질긴 노력으로 하나둘 아주 조금씩 그들이 떨구고 간 권력 난장질의 찌꺼기가 발견됐을 뿐 얼마나 많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그 전모를 알 길 없는 탓이다. 이제 몇 가지는 확실해졌다. 청와대 사람은 누구와 밥을 먹고 통화했는지 빠짐없이 기록해둬야 한다. 이번처럼 뭔가 분명한 의혹이 제기되면 그 기록을 제출하도록 해야 밤마다 권력 도둑질 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기록하지 않거나 대포폰을 쓰거나 공용차량에 외부인을 태우고 검문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다 적발되면 곧바로 범죄 혐의자로 다뤄야 한다는 점을 온 국민이 이번에 분명하게 알게 됐다. 사생활 보호라는 허울 좋은 변명도 청와대 사람에겐 필요 없는 이유다.

 운 좋게도 버려진 태블릿PC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통화 녹음이나 사진이 없었다면 근거 없이 괴롭히지 말라며 목청을 높이고 몽둥이를 들었을 그들이다. 최 씨 덕분에 청와대 같은 권력에는 감시의 빅브러더가 절실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