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열 사회부 기자
박 대통령에게서 선덕여왕의 모습을 봤다는 묘심화 스님은 2006년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라는 책을 냈고,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듬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그 직후 못내 아쉬운 감정을 내비친 뒤 다시는 스님을 찾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자비정사를 오갈 때 스님은 최순실 씨의 전남편 정윤회 씨,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도 봤다. 스님은 최 씨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정 씨나 안 씨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에게 “멀리하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는 스님의 예언은 5년 뒤에야 이뤄졌다. 박 대통령과 연락은 끊겼지만 스님은 덕담을 적은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냈다.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마음으로 가까울수록 멀리하라”라는 내용도 담았다. 답장은 없었다.
대통령에게 ‘질긴 인연’이란 반드시 끊어야 할 무서운 관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려운 시절부터 자신을 도왔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인연을 청와대 주인이 된 뒤에도 끊지 못해 비극을 맞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내곡동 사저 터를 아들 명의로 사들이는 바람에 편법 증여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공적 영역에선 아들과의 인연도 끊어 냈어야 했다. 박 대통령 역시 부모를 다 잃고 세상이 외면할 때 자기를 도와준 40년 지기 최 씨를 대통령이 된 뒤 떼어 내지 못해 결국 사달이 났다. 오랫동안 육영재단 이사장이나 국회의원 연설문, 당 업무를 도왔기에 최 씨 일가가 사가(私家)에서 대통령 연설문이나 정부 문건도 받아 보는 것을 무심히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통령직의 무게나 의무, 법적 책임조차 몰랐던 무지의 소치다. 동서고금의 대통령학 교과서조차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득표 기술자’들이 국민의 운명을 짊어진 결과다.
‘아첨 잘하는 자는 충성하지 못하고, 간쟁을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다’(목민심서), ‘사려 깊은 사람들을 선발해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군주론)라는 내용만 대통령들이 제대로 알았더라면, “가까울수록 멀리하라”라는 묘심화 스님의 고언을 가슴에 새겼더라면 참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