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만물은 변합니다. 우리 일상도 변합니다. 인생무상이란 말이 있듯이, 삶이 삶이기 위해서도 삶은 변화합니다. 다른 한편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다수의 사람들은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고 거부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삶에는 다양한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 관습, 타성, 반복되는 것이 주는 편안함, 기존의 것이 주는 확신감이 삶에서 정지 마찰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도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 유연하게 행동할 줄 알 만큼 분별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현실을 직시합니다. 그 이유는 “타고난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성공 가도를 걸어온 사람의 경우 바로 그 행동 방식을 버리도록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곧 자기 자신의 변화에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 ‘본판 불변의 법칙’이라는 해학 가득한 시사용어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통치자라면 이 법칙(?)을 극복하는 능력과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의 시대에 군주는 최고 절대 권력자이기 때문에 더욱이 ‘불가능할 것 같은’ 변화의 능력과 지혜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나라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경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최고 통치자가 자기 변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시도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곧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를 부패시킨다는 격언을 무색하게 하려면, 최고 통치자 자신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활력 넘치는 생명체여야 합니다. 또한 생명력 넘치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평소 자신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적 본질을 권력으로 인식할 때,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모습은 일그러지고 활력은 소멸하기 시작합니다. 권력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정치 공동체를 유지 보존하기 위해 사용하는 한시적 도구입니다. 여기에 마키아벨리식 ‘권력 사용법’의 진의가 있습니다. 그의 사상은, 자기 성찰 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경고, 플라톤이 주창했던 ‘지혜로운 왕’의 개념,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이 단계성의 개념이 아니라 항시 함께 해야 할 동시적 소임이라는 ‘대학(大學)’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