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평야 주변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어슴푸레한 여명을 가르며 회색 연미복을 입은
귀족 같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베리아에서부터 수천 km를 날아온
이 겨울 진객은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논바닥에 떨어진 벼 이삭을 주워 먹고
비무장지대뿐만 아니라 마을 주변까지 오가며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몸이 새하얀 깃털로 덮여 있는
시베리아흰두루미(위 오른쪽 사진) 한 마리도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종으로
국내에선 보기 드문 희귀 철새입니다.
해마다 철원평야엔 2000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찾아와
겨울을 보낸 뒤 이듬해 3월 고향인 시베리아로 돌아갑니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새들의 비상은 생존을 위한 몸짓이지만
수천 km 대장정을 이뤄낼 수 있는 동력입니다.
이 위대한 일상 앞에서
인간이 만든 비무장지대 철책은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Feeling의 사진 원본은 동아일보 독자정보실을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02-2020-0300
강원 철원에서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취재 협조=철원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