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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장선희]영화가 시시해진 이유

입력 | 2016-11-14 03:00:00


포스터 속 문구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마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선희 문화부 기자

 12월 개봉하는 이병헌 강동원 주연의 영화 ‘마스터’가 최근 인터넷을 달궜다.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라는 포스터 속 문구 때문이다. 10월 말 영화 포스터가 공개된 뒤 누리꾼들은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는 이미 터졌는데 뭘 더 보여줄 거냐” “뉴스 나오는 안방이 영화관이다”라는 반응을 보여 해당 영화 관계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영화사 보도자료에는 게이트 대신 ‘사기사건’이란 표현이 새롭게 등장했다.

 영화계에선 지난해 말 개봉한 ‘내부자들’이 1년만 늦게 나왔으면 700만 관객이 아닌 100만 관객도 모으기 힘들었을 거란 소리가 나온다. “대중들은 개돼지” 발언은 한낱 영화 대사가 아니었다. ‘설마 저렇게까지…’ 했던 온갖 유착이 뉴스의 한 장면이 됐다. ‘내부자들’의 장르를 범죄·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다시 분류해야 한다는 씁쓸한 농담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극장가에선 코미디 영화 한 편이 돌풍을 일으켰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다. 역대 코미디 영화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2013년 ‘수상한 그녀’(관객 866만 명)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던 코미디 장르로선 참 오랜만의 흥행이다. 기자와 만난 감독은 뜻밖의 성적에 놀라면서도 “눈물보단 웃음, 잔혹한 이야기보단 훈훈한 성장 드라마가 필요한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짚었다.

 극장가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이처럼 이변 소리를 들으며 흥행하는 영화는 사람들이 돈 주고서라도 보고 싶은 세상을 때맞춰 담아낸 게 비결일 것이다. 실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웃을 일 없는 세상, 극장에서라도 웃고 싶었다’는 내용의 후기를 올리고 있다.

 흥행 역사를 새로 쓴 영화는 또 있다. 대한민국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정치·사회 다큐멘터리다. 뉴스타파 PD인 최승호 감독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자백’은 관객 12만 명을 넘겼다. 국내의 정치·사회 다큐멘터리로는 최고 흥행 기록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역시 최근 비선실세 국정 농단 파문과 맞물려 관객 10만 명을 넘겼다. 두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 이런 주제의 영화가 이례적으로 흥행한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반대로 최근 개봉조차 뜸해진 장르가 있다. 한국공포 영화다. 성수기인 여름철마저 딱 한 편 개봉하는 데 그쳤는데 ‘여고괴담’으로 국내에 공포 장르가 자리 잡은 뒤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요새 가을, 겨울 비수기를 노린 해외 수입 공포 영화들이 개봉하고는 있지만 옛날만 못한 장르가 된 건 틀림없다. 영화 평론가들과 제작사 관계자들은 “세상이, 내 현실이 귀신보다 더 징하고 무서운데, 누가 굳이 공포 영화를 보고 싶겠느냐”고 분석했다. 하긴 장관 후보자가 무려 47번의 전생체험 후기를 전하고 도심 굿판에 참석했다 물러나기까지 했으니, 정말 현실이 웬만한 공포 영화 못지않다.

 지금 우리 사회를 영화 장르로 분류하자면 스릴러나 공포쯤 될까. 망토 입은 히어로가 기이한 마법을 부려대는 영화를 보고 있어도 어쩐지 크게 놀랍지가 않다. 오죽하면 올해 말 개봉을 앞둔 영화들의 최대 경쟁자가 ‘최순실’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겠는가. 요즘처럼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지는 때가 없다.
 
장선희 문화부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