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웹툰 IP를 활용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만찢남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남자 주인공이라는 말의 줄임말이죠. 말 그대로 현실 세계에는 있을 수 없는 만화 캐릭터처럼 생긴 훈남들이라는 뜻인데요, 오징어 판독기도 벗어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평생 들을 수 없는 말이겠죠.
아무튼 다양한 소재를 찾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만화를 소재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무척 흔한 일입니다. 이미 완성된 스토리라인과 탄탄한 팬층 덕분에 아예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는 것보다는 성공 확률이 높으니까요. 특히, 게임쪽은 만화와 타겟층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게임을 만드는 일이 예전부터 많았습니다. 드래곤볼, 원피스, 나루토 등등 성공 사례도 무척 많습니다.
그럼, 스포츠 장르는 어떨까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현실 스포츠와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인 스포츠 게임과 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 과장을 섞기 마련인 만화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공을 던지면 불꽃에 휩싸이는 만화도 있고, 테니스 공으로 대지를 가르는 그런 만화도 있으니까요! 정말 “리얼리티 따윈 개나 줘버려”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 듯한 만화들이 대부분입니다. 로스터와 오버롤에 민감한 스포츠 게임 마니아들은 질색할 수준이죠.
스포츠 만화를 소재로한 만든 게임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단연 캡틴 츠바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축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만화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캡틴 츠바사는 해외 유명 축구 선수들도 이 만화를 알고 있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축구 만화입니다. 국내에서는 TV에서 방영된 축구왕 슛돌이가 더 인기를 끌었지만, 축구왕 슛돌이는 캡틴 츠바사의 아류작이며, 일본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출처=게임동아)
캡틴 츠바사는 독수리 슛, 부메랑 슛 등 현실세계에서는 좀 많이 힘들어보이는 필살기들이 난무하는 열혈 스포츠 물이기 때문인지, 게임도 피파, 위닝일레븐 같은 실제 시합이 아니라 특정 장면마다 선택지를 고르는 시뮬레이션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입니다(그럼 테크모 월드컵 98은? ㅎㅎ) 선수가 공을 잡고 달리다가 수비수가 나타나면 패스를 할지, 슛을 할지 선택하고, 상대의 능력치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리는 방식이죠. 패미콤 플랫폼으로 첫 작품이 나왔던 1988년에는 당연히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식이었겠지만, 첫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이 게임의 독특한 개성으로 남게 됐습니다. 패미콤 2편, 게임기어, 게임보이, 게임보이어드밴스, 슈퍼패미콤, 메가CD, 게임큐브,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2, 닌텐도DS 등 수많은 기종으로 출시됐는데, 대부분 같은 방식을 고수했네요.
(출처=게임동아)
물론 피파, 위닝일레븐 같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나온 다음부터는 서서히 인기가 떨어지면서 이제는 시리즈의 막을 내린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게임이 2010년에 닌텐도DS로 등장한 30주년 기념작 캡틴 츠바사 격투의 궤적이라네요. 아마도 앞으로는 후속작이 등장하기 어렵지 않을지…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 게임의 정신을 계승한 게임 이나즈마 일레븐이 있으니까요. 요즘 아이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나즈마 일레븐은 레벨5가 NDS로 출시한 필살기가 난무하는 축구RPG로 방식이 캡틴 츠바사와 유사합니다. 실제로 개발진도 캡틴 츠바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미니 게임이긴 하지만 파이널판타지10에 들어있던 블리츠 볼도 캡틴 츠바사와 같은 방식입니다.
캡틴 츠바사는 축구왕 슛돌이에 밀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피구왕 통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때 아이들은 누구나 다 불꽃 마크가 그려진 피구공을 들고 다녔으니까요. 피구 선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계적인 피구 선수로 성장하게 되는 통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이 만화는 지금 보면 참 유치하긴 합니다만 그 때 당시에는 스포츠 만화의 정석 같은 작품이었죠. 워낙 인기 있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게임으로도 많이 등장했습니다만, 잘 알려진 게임은 썬소프트가 메가드라이브로 발매한 버전입니다. 당시 오락실에서 즐길 수 있었고, 불꽃슛, 도끼슛 등 선수들의 필살기를 제대로 구현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죠. 필살기를 받고 일정 시간 내에 다시 던지면 상대의 필살기를 그대로 돌려줄 수 있어서 친구들과 불꽃슛 랠리를 즐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출처=게임동아)
물론 이 게임이 전부는 아닙니다. 썬소프트가 이 게임을 출시하기 전에 패미콤으로 출시한 버전이 있는데, 이 게임은 메가드라이브처럼 실제 시합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능력치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카드 배틀 시스템이어서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메가드라이브 버전과 동일한 해에 슈퍼패미콤 버전도 출시했는데, 같은 회사 게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메가드라이브 버전과 달리 선수들의 모습이 전혀 귀엽지 않았고, 한 대만 맞아도 바로 아웃되는 규칙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았거든요. 때문에 피구왕 통키라고 하면 메가드라이브 버전이 진리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국내에 PC판도 발매됐었는데, 이 것 역시 메가드라이브 버전을 옮긴 것입니다.
(출처=게임동아)
세계 최고의 농구라고 하는 NBA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던 농구 만화의 바이블 슬램덩크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사실 국내 농구 붐은 슬램 덩크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죠. 원작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만큼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게임은 유명한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 1995년에 오락실에 출시된 반프레스토의 슈퍼 슬램 외에는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네요.
(출처=게임동아)
슈퍼 슬램은 단순히 오락실에서 즐길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뛰어난 완성도 덕분에 꾸준한 인기를 얻은 게임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원작에 등장했던 북산, 상양, 능남, 해남대 부속 고등학교 중 한팀을 골라 시합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동작이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덩크의 호쾌한 손맛이 원작을 그대로 옮긴 듯 해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원작은 강백호가 속한 북산이 약팀에서 강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게임에서는 북산이 밸런스가 좋아서 강팀입니다.
(출처=게임동아)
슈퍼슬램 외에도 슈퍼패미콤, 게임보이, 게임기어, 메가 드라이브, 세가새턴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됐는데 대부분 상황에 맞춰 선택지를 고르는 가위 바위 보 같은 게임이었기 때문인지 별로 인기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나마 메가드라이브 버전과 세가새턴 버전이 실제 플레이였고, 특히 세가새턴 버전은 3D가 가미되어 있어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실제 게임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성적이 좋지는 못했습니다. 런앤건 수준으로만 나왔어도 괜찮았을텐데 아쉽네요. 최근에는 모바일로 카드RPG 형태의 신작이 나오기는 했지만, 별로 인기가 없었는지 금방 망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구름엔터테인먼트에서 슬램덩크 온라인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도 있었는데요, 이것 역시 아쉽게 중단됐습니다.
(출처=게임동아)
언제 끝날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 사골 같은 스포츠 만화 더파이팅도 게임의 단골 소재입니다. 현존 최장기 연재 스포츠 만화인 더파이팅은 왕따였던 일보가 마모루라는 천재 복서를 만나서 진정한 복서로 거듭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제 겨우 일본을 벗어나 세계 도전을 시작했으니 아직 끝나려면 멀었습니다. 벌써 114권인데… 일보 뿐만 아니라 마모루, 청목, 기무라, 일랑, 센도, 마시바 등 등장 인물 모두가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출처=게임동아)
더파이팅 게임은 위에서 소개한 게임들보다 최신작이 많기 때문인지 게임에 대한 평가도 대부분 좋습니다. 특히 PS2 버전은 국내에 1, 2, 3편 모두 정식 발매 됐기 때문에 국내 팬들도 많이 친숙할 것 같네요. 제목이 하지메의 일보로 부르기도 하고, 시작의 일보라고 부르기도 해서 헷갈리긴 합니다만.
(출처=게임동아)
더파이팅을 소재로 한 게임은 대부분 ESP가 만들었는데 GBA와 Wii, NDS, PS2, PS3 등 비교적 최신 기종에 몰려 있습니다. 가장 예전 기종이라고 할 수 있는 GBA 버전은 2002년에 출시됐는데, 아무래도 화면이 작다보니 상대편만 보이고, 이쪽은 글로브만 보이는 반쪽짜리 형태입니다. 하지만, 글로브만 보인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됩니다. 왠만한 게임들보다 더 뛰어난 타격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뎀프시롤, 가젤펀치, 일랑의 카운터 등 선수들의 필살기도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출처=게임동아)
NDS와 Wii, 즉 닌텐도 계열 게임기 버전도 꽤 인상적입니다. NDS 버전은 두개의 스크린을 활용한 미니 게임들이 소소한 재미를 주고, Wii 버전은 Wii 컨트롤러를 활용해 실제 복싱처럼 즐길 수 있습니다. GBA처럼 자신의 모습은 투명하게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의 동작이 다 보여서 실제 복싱 같은 느낌이 납니다. 참고로 Wii 버전의 개발사는 ESP가 아니라 AQ인터랙티브입니다.
(출처=게임동아)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은 ESP가 만들었고, PS2로 1편, 2편, 올스타즈, PS3로 25주년 기념작이 나온 상태입니다. PS2 버전은 국내 모두 정식 발매됐는데, 난이도가 높아 즐기기 쉽지 않았지만, 원작 재현률이 매우 높아서 호평 받았죠. PS3 버전은 아쉽게도 국내 정식 발매는 되지 않았지만, 가장 최신 기종 답게 원작 만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등장 인물도 상당히 많아서 팬이라면 당연히 소장하고 싶어질 정도라고 합니다.
(출처=게임동아)
코시엔으로 유명한 나라답게 고교야구를 소재로 한 야구 만화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메이저는 인기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특히 유명 메이저리거의 공에 맞아 사망한 선수의 아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다는 정석적인 성장 스토리로 유명합니다. 물론 오른손잡이가 오른팔 부상 이후 왼팔로 160km를 던지는 황당한 설정이 판타지 스럽기는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만화이니까요.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와 프로야구 스피리츠라는 양대 산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인지 야구 만화를 소재로 한 게임은 많지 않습니다만, 메이저는 워낙 인기있는 만화이기 때문인지 게임으로 몇번 등장했고, 굉장히 유명하기까지 합니다. 반대의 의미라는게 문제이지만요. 문제가 되는 그 게임은 Wii로 발매된 던져라! 자이로볼과 퍼펙트 클로저인데, 그 중에서도 퍼펙트 클로저에 대한 평가가 어마무시합니다. 가끔 커뮤니티 유머 게시판에 황당한 야구 게임이라고 등장하는 짤방이 있다면 이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끔 주심과 타자가 투수의 반대를 보고 서있거나, 포수가 유격수 키를 넘긴 타구를 잡으러 달려 가는 등 버그가 엄청납니다. 발매 당시 일본 유명 게임잡지인 패미통 크로스 리뷰에서 40점 만점에 15점을 받았다고 하네요. 게임 퀄리티 검수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닌텐도가 발매를 허락한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 수준입니다.
(출처=게임동아)
위 작품들에 비하면 신상이라고 할 수 있는 테니스의 왕자와 쿠로코의 농구도 최근 들어 게임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스포츠가 아니라 판타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긴 하지만, 이런 황당함을 즐기는 분들이 무척 많은 것 같네요. 두 작품 모두 엄청난 팬층을 확보하고 있으니까요.
테니스와 농구라는 전혀 다른 종목을 소재로 한 두 작품을 같이 거론하는 이유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테니스공이 살상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판타지 배틀 만화가 되어가고 있는 테니스의 왕자나 무조건 쏘기만 하면 들어가는 3점 슛이나, 눈 앞에서 사라지는 선수 등 등장 인물들이 모두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한 쿠로코의 농구는 스포츠 만화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황당한 설정으로 유명한데요, 등장 인물이 모두 미소년이다보니 여성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두 작품 모두 게임이 정식 스포츠가 아니라 미소년 캐릭터 게임 형태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테니스의 왕자는 GBA, PS, PS2, NDS, 3DS 등 여러 플랫폼으로 발매됐는데, PS2로 발매된 테니스의 왕자 : 학원제의 왕자님 같은 여성 대상의 블링블링한 게임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PS2로 발매된 스매쉬 히트 같은 정식 스포츠물도 있기는 하나, 정식 스포츠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민망한 수준입니다.
(출처=게임동아)
쿠로코의 농구도 테니스의 왕자나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종목만 다를 뿐이지 미소년들이 다른 매력을 가진 미소년들과 만나서 대결한다는 컨셉은 동일하니까요. PSP로 기적의 시합, 3DS로 승리의 기적이 출시됐는데 둘다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입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등장한 크로스 컬러스는 아예 미소년들을 수집하는 카드 게임이네요. 정말 스포츠의 탈을 쓴 미소년 판타지 장르다운 모습입니다.
(출처=게임동아)
이 외에도 거인의 별이나 내일의 죠 등 인기 스포츠 만화를 소재로 만든 게임들이 꽤 있습니다만 워낙 오래된 작품들이고, 국내에는 팬들이 많지 않을 듯 해 제외했습니다. 당신에게 최고의 만찢겜은 무엇인가요? 물론 스포츠 게임 한정으로. ㅎㅎ
동아닷컴 게임전문 김남규 기자 kn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