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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카페]‘거수기 이사회’ 막내리는 이재용의 삼성

입력 | 2016-11-16 03:00:00

주요 정책 즉석결의 관행 없애고 충분한 설명후 다시 모여 최종 의결
이사회 중심 경영의지 드러내




김지현·산업부

 14일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에선 80억 달러(약 9조3600억 원) 규모의 ‘하만’ 인수 결의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다. 이달 내 발표하기로 한 주주환원 정책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사내외 이사진에 사전에 보고한 것이다. 이날 보고를 들은 이사진은 생각을 정리해 이달 중 다시 모여 최종 안을 결의하게 된다.

 이제까지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 이사회는 이사진에 주요 사안을 보고한 뒤 당일에 곧바로 결의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 때문에 이사들이 회사가 이미 정해 놓은 방향대로 깃발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거수기 논란’이 이어져 왔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을 계기로 앞으로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등기이사 이재용 시대’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앞으로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 및 임원 인사를 포함한 주요 결정들도 장기적으로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 이뤄질 수 있도록 이사회의 권한과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시점은 조금 늦춰졌지만 이 부회장이 조만간 단순 등기이사가 아닌 이사회 의장을 맡아 이런 변화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하고 있다. 다만 이사회 기능을 지속해나가기 위해 이 부회장은 새로운 삼성그룹 수장으로서 과거와의 단절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준조세는 역대 정권에서 늘 있어 왔던 일”이라며 “정권이 바뀌면 또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이번 승마협회 이슈나 미르재단 출연 논란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앞으로 주요 결정을 모두 이사회에 맡기면 된다.

 이사회에서 볼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차원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면 그대로 지원하면 된다. 반면 기업 활동에 해가 된다는 게 이사회의 판단이라면 그 또한 거절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된다. 기업으로서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 오히려 외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병풍이 될 수 있다.

 이사회 중심 의사 결정 구조가 자리 잡으면 지금처럼 굳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거쳐 ‘모금’할 필요도 없어진다. 현재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등 주요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도 자연스레 계열사 이사회 지원 조직으로 바뀔 수 있다.

김지현·산업부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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