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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도 못한 딸… 납골당에 판결문 갖다 줄 것”

입력 | 2016-11-16 03:00:00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3명 첫 승소… 40대 아빠의 눈물




 “아이 납골당에 판결문이라도 갖다 주고 싶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탓에 생후 10개월 된 딸 예안 양을 잃은 김대원 씨(41)는 15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판결이 나온 직후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해당 업체가 파산해 배상금을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김 씨는 “딸아이의 돌잔치까지 예약을 해뒀는데 마른기침을 하고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 지 3주 만에 세상을 떴다”며 “먼저 간 아이를 위해 끝까지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부장판사 이은희)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제조업체의 민사상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최모 씨 등 피해자 및 유가족 13명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세퓨는 각각 1000만 원에서 1억 원씩 총 5억4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당초 옥시레킷벤키저 등 5개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세퓨를 제외한 다른 4개사와는 지난해 9월 조정이 성립됐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이 입은 사망이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여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며 “위자료로 청구한 금액 모두를 인정해 청구 금액대로 선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의 관리감독상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은 지난해 1월에도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에 유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피해자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날 판결이 확정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숨진 4명의 유족들은 각각 1억 원을 받게 된다. 직접 상해를 입은 피해자는 3000만 원씩, 상해를 입은 피해자의 부모나 배우자는 1000만 원씩 지급받는 등 총 10명이 배상액을 지급받게 된다.

 한편 이번 판결에는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된 위자료 산정 방안은 적용되지 않았다.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법원은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조·유통·판매·공급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로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나 일반인을 사망하게 했다면 기본적인 위자료만 3억 원을 물릴 수 있다. 여기에 고의나 중과실에 따른 불법행위,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수단을 사용한 경우, 또 생명이나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危害) 가능성이 있거나 소비자가 상당한 신뢰를 했던 경우에는 사망 시 6억 원이 위자료로 책정될 수 있다. 특별한 사정이 추가로 확인되면 재판부는 6억 원의 50%를 증액한 9억 원 이상을 지급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

 법원 관계자는 “최근 법원 내부의 위자료 현실화 논의에 대해 재판부도 잘 알고 있고 이번 판결에서도 그런 부분을 함께 검토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원고들의 청구금액 전액을 다 인용했고 청구취지 금액을 넘어 위자료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5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 등 430여 명이 국가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낸 집단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비롯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손해배상소송 11건이 진행되고 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