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불륜드라마
드라마 ‘공항 가는 길’에서 남녀 주인공인 도우(이상윤)와 수아(김하늘)가 포옹하는 장면. 기혼자인 두 사람은 서로의 배우자에게서 받을 수 없는 위로의 감정을 나누며 사랑에 빠진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별 ‘HD164595’에 남겨 둔 남편도 괜히 그리워지고, 허전한 마음 TV로 달래려 리모컨을 집어 드는데…. 》
새로운 불륜 드라마의 물꼬를 튼 ‘애인’(1996년)을 비롯해 불륜 드라마를 진화시켜 온 ‘내 남자의 여자’, ‘따뜻한 말 한마디’(왼쪽부터). 이들 드라마는 자극적인 ‘막장’ 전개가 아닌 억제된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동아일보DB
○ 명품 멜로 인기 앞질러
“이혼, 쉬운 일 아니에요. 내 한때를 다 부정하는 일이잖아요.”
또 저런 대사다. 왜 이곳 TV 드라마에선 허구한 날 불륜에 이혼 얘기란 말인가. 채널을 돌리려는 찰나, 아름다운 영상과 감성적인 대사가 시선을 잡아끈다. 10분만, 딱 한 편만 더 하다 보니 마지막 회까지 보고 있는 에이전트31. 아, ‘공항 가는 길’(KBS2)에 낚였다.
김하늘 이상윤 주연의 이 드라마는 제작보고회 때부터 불륜 미화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명품 멜로’로 끝맺었다는 평이 적잖다. 제작진이 내건 기획 의도부터가 여느 불륜 드라마와 달리 시적이다. ‘삶에 두 번째 사춘기가 온다’(드라마 홈페이지)라니…. 기혼 남녀의 금지된 사랑, 불륜이 ‘두 번째 사춘기’라는 풋풋하고 감성적인 표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불륜이 ‘명품 멜로’ ‘아름다운 로맨스’로 둔갑했단 말인가. 혹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결정 이후 불어오는 새바람은 아닐까.
쓸데없이 심각해진 에이전트31. 불륜 드라마 계보를 뒤적이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웰메이드 불륜 드라마의 시초로 꼽는 것은 1996년 방영된 유동근 황신혜 주연의 ‘애인’(MBC)이다. ‘불륜을 하면 벌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줄거리 대신 두 남녀의 감성 멜로에 초점을 맞춰 ‘아름다운 불륜’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탄생시켰다. 이후 불륜 소재를 작가의 역량으로 업그레이드한 ‘내 남자의 여자’(2007년), 불륜을 통해 삶에 대한 성찰까지 하게 한 ‘따뜻한 말 한마디’(2013년)를 거쳐 최근 ‘공항 가는 길’까지 꾸준히 ‘진화’ 중이다.
○ 억제된 불륜이 판타지 자극
최근 웰메이드 불륜 드라마에서의 불륜은 욕망보다는 상대의 지치고 상처 입은 삶을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그 방식은 조심스럽고 배려로 가득하다.
드라마 주 시청자인 30∼50대 여성들이 현실에 드러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불륜설에는 분노하지만 드라마의 불륜엔 관대하다 못해 공감하는 것도 노골적이지 않은 감정선을 적절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작자 입장은 뭘까. 한 지상파 드라마 PD는 에이전트의 질문에 불륜은 버리기 힘든 매력적인 소재라고 했다. “불륜은 시청자들의 공감과 시청률을 보장하는 소재예요. 다만 막장 논란을 피하고, 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고급스러운 포장법을 고민하는 추세입니다.”(다음 회에 계속)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