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인 쇼바와 슈쿠마가 사는 동네에 전선 보수작업 때문에 닷새 동안 저녁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정전이 된다. 출산을 앞둔 아내가 병원에서 사산의 고통을 겪는 동안 남편은 학회에 참석하고 있느라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그 후 두 사람은 한집에서도 가능한 한 서로를 멀리하며 예의바른 룸메이트 비슷한 사이가 돼버린다. 단전이 시작된 날부터 이 젊은 부부는 양초를 켜놓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문득 “전에 얘기한 적이 없는 것들을 말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아내는 시어머니가 며칠 집에 와 있을 때 야근 핑계를 대곤 친구를 만난 일, 남편은 아내가 생일 선물로 사준 조끼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하고 환불받은 돈으로 호텔 바에서 술 마신 이야기 같은 것들. 상대나 자신을 실망시킨 일이나 상처를 주었다고 느껴지는 그런 일들에 대해서.
어느새 두 사람은 정전이 시작되어 양초를 켜놓은 적당한 어둠 속에서 서로 고백을 하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야말로 “집이 어두울 때 뭔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서로에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양초는 길고 꾸준하게 타오른다. 마침내 마지막 날, 실망스럽게도 보수 작업이 예정보다 일찍 끝나 그날부터 전깃불이 들어온다는 안내문이 와 있었다. 두 사람은 전깃불 대신 양초를 켜고 저녁식사를 한다. 그 후 그 젊은 부부는 어떤 마지막 고백들을 하게 될까. 혹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알게 된 사실 때문에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지는 않을까.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의 단편소설 ‘일시적인 문제’의 내용이다.
개인적인 일과 재난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구별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지켜보고만 있기란 어려워졌다. 훗날 2016년 11월을 돌아보면 어떤 기억이 맨 앞에 남을 것인가. 그 많은 것들 중 어쩌면 이 열어서 보여줄 수 없는 마음을, 타오르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던 가장 좋은 도구가 격려하듯 서로가 서로에게 불을 밝혀준 양초 한 자루였다고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인 심보르스카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시 ‘지도’의 끝부분을 읽는데 기어이 눈물이 차오른다. ‘나는 지도가 좋다, 거짓을 말하니까/잔인한 진실과 마주할 기회를 허용치 않으니까/관대하고, 너그러우니까/그리고 탁자 위에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또 다른 세상을 내 눈앞에 펼쳐 보이니까.’
100만 명의 시민들이 엄숙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지켜내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