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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두만강의 변신과 대량 탈북시대의 종말

입력 | 2016-11-17 03:00:00


북한 북부 국경에서 살림집을 건설한 북한 군인들이 만세를 부르며 자축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주성하 기자

 요샌 북한이 북부 홍수 피해지역 살림집 건설을 완공했다는 소식 같은 건 언론의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북한은 50일 동안 총력을 쏟아부어 1만1900채의 살림집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나 내부공사까지 끝낸 것 같진 않다. 살림집 겉모양은 훌륭해 보인다. 예전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었지만 이젠 북한이 중국 같고, 중국이 북한 같은 착시현상까지 벌어질 만하다.

 현지 주민은 “열쇠만 들고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하라”는 김정은 지시가 내려왔다며 살림살이 전부를 당국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글쎄. 그렇게까지 해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낡은 집 대신 새 집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듯하다.

 북한은 이번 수해를 두고 ‘전화위복’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낡은 부락들이 현대적으로 바뀌게 됐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전화위복이란 말은 김정은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북한은 두만강에 바짝 붙어있던 마을들을 수차례 이전하려고 시도했다. 강 옆 부락들이 탈북의 온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실제로 실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 많은 마을을 강제로 철거해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을 이번 홍수가 해결해준 셈이다. 그토록 눈엣가시 같던 강 옆 마을들이 사라졌다. 북한은 멀리 산 밑으로 마을들을 이전했다. 핑계도 좋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란다.

 이 때문에 새로 지어진 마을들을 보면서 “집들이 멋있다”고 감탄하기에 앞서 “이젠 탈북이 정말 어려워지겠구나”라는 절망스러운 생각부터 들었다.

 집단 부락화된 마을엔 담장이 없다. 옆집 모르게 밀수하는 것도 불가능해졌고, 한국 드라마를 보기도 힘들어졌으며, 수상한 외부인은 즉시 고발될 것이다. 국경경비대와 주민들의 결탁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어느 집에 어느 군인이 드나드는지 전체 마을이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탈북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부담도 더 커졌다. 국경 사람들은 김정은의 은혜를 받았다. 만약 탈북했다 체포되면 현대적 주택을 선물로 내려준 지도자의 은혜를 팽개치고 도망친 배신자라는 무서운 낙인이 찍히게 된다. 지금은 멋진 집이 생겼다고 좋아할 국경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숨 막히는 게 뭔지 체감할 것이다.

 게다가 국경경비는 나치의 집단 수용소가 울고 갈 정도의 구조로 완성되고 있다. 탈북한 국경경비대원은 “두만강 경비대 한 명이 맡고 있는 구간은 8m”라고 말했다. 입대할 때 아예 “조국이 맡겨준 8m를 목숨으로 사수하겠다”는 선서까지 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과거 마을들이 있었던 두만강 옆을 따라 넓은 경비도로를 만들고, 양옆에 철조망까지 세우면 완전한 국경 봉쇄가 가능해진다. 높은 곳에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하면 두만강엔 개미 한 마리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심지어 북한은 두만강을 따라 대못이 튀어나온 대못판을 깔아놓는 것도 모자라 지난해부턴 목함지뢰까지 묻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 소식통은 “지난해부터 지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목함을 여러 기업들에 할당해 걷어 들였고 군수공장에서 폭약을 설치해 주요 탈북 통로에 묻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뜻이다.

 철조망과 지뢰, 대못판을 피해 두만강을 넘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중국은 홍수로 파괴된 철조망을 과거보다 더 튼튼하게 복구하고 있고, 두만강 바로 옆에 군부대도 증강해 주둔시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량 탈북의 시대는 불행하게도 이젠 끝난 듯하다. 11일 저녁을 기점으로 한국 입국 탈북자는 3만 명을 넘었지만, 어쩌면 이 안에 포함된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보수정권 9년 동안 아무리 북한을 압박하고 한국으로 넘어오라 외쳐도 정작 현실은 원하던 것과는 정반대가 됐다.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는 더 빨라지고 이젠 탈북까지 막히게 됐다. 게다가 제 코가 석자인지라 북한에 대한 남쪽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지고 있다.

 국경이 막힐 것임을 재빨리 눈치 채고 지난달 말 탈북한 노동당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오는 사람들은 진짜로 죽음을 각오하고 와요. 무서워서 못 넘어옵니다. 잡히면 영영 나오지 못하는 수용소에 갑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다 철조망을 붙들고 서서 언제면 남쪽으로 갈까, 모두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를 매일 어이없게 만드는 소식들도 한국을 동경하는 북한 주민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북한 당국은 최근 남쪽의 상황을 거의 실황 중계하듯 신이 나서 보도하고 있는데, 12일 밤의 100만 촛불시위 소식도 반나절 만에 전했다. 하지만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대로 물러난다면 저런 민주주의 체제로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북한 사람들의 소망은 오히려 몇 곱절 커질 것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