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TV에 최순실 관련 기사만 나오면 바보상자를 던지고 싶은 분노를 표출하는 국민도 있다. 또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진다거나, 할 일은 많은데 요즘 도통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는 사람도 많다.
어디 어른뿐일까. 정유라 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을 보면서 대입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목숨을 걸다시피 해온 대부분의 수험생들도 허탈하고 분통이 치밀 것이다. 편의점 시유(CU)에 따르면 10월 19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소주 매출이 25%나 뛰었을 정도로 술 소비량이 늘었다.
문제는 화병은 별일 아닌 듯 지나치기 쉽지만 악화되면 고혈압, 심지어 심근경색 협심증 뇌중풍(뇌졸중) 등으로 심각해지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분노는 악화되면 분노조절장애로 넘어간다. 분노조절장애는 화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참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을 폭발하는 증세다.
이번 사건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빨리 해결되면 순실증에 걸린 국민들의 정신건강은 금방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화가 된다면 의사인 나조차도 화병이 도질 판이다. 나와 주변 지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국내 최고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처방을 요청해봤다.
국내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정도언 서울대 의대 교수는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 세 가지 처방을 제시했다. 먼저 흥분을 자제하라고 했다. 내가 속상해하고 흥분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개인이 통제할 상황이 아닌데도 흥분을 하면 스트레스가 더 증가한다.
둘째, 나의 개인적인 문제와 국가적인 문제를 철저히 나눠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두 사회 탓, 국가 탓을 하면 일시적인 감정정화(카타르시스)는 되겠지만 근본적인 도움은 안 된다. 이 또한 스트레스를 더욱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과도하게 사회현상을 연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검색하고 인터넷 뉴스를 보는 것을 줄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진실과 의혹 등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직접 풀어보겠다고 하루 종일 매달리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가들의 정신건강 처방은 자신을 얼마나 잘 컨트롤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태가 너무 엄중해서 대가들의 처방을 따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 울분이 나를 해치거나 집어삼키지 않도록 평상심을 잃지 말고, 침착하게 일상에 몰두하자. 이 혼란한 정국에서 중심을 잡고 슬기롭게 넘기도록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야 될 것 같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